⭐ 본 글은 국내 미 출간된 드라마 장월신명 원작소설 흑월광나온(黑月光拿稳BE剧本)을 제가 직접 번역한 것입니다. 무단으로 복제하지 말아 주세요 ⭐
장월신명 원작소설 [黑月光拿稳] 흑월광나온 (한국어 번역)
39장. 반야부생
소늠은 친위대를 이끌고 왔고, 그 외에도 옷이 남루한 노인이 한 명 있었다.
노인은 히죽거리며 담태신을 향해 말했다. “이놈아, 못된 짓을 다 해놓고도 이제는 신령까지 모독하려 하다니! 요교를 만들어 내겠다고? 업보에 휘말려 비참하게 죽고 싶지 않다면 당장 그만두는 게 좋을 거다!”
소소는 담태신이 입가를 차갑게 비틀어 올리는 것을 보았다.
그녀는 만약 이곳에 엽빙상이 없었다면, 담태신이 분명히 비웃으며 반박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엽빙상이 여린 모습으로 그곳에 서 있는 덕분에, 담태신은 오만함을 거두고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우경이 말했다. “계 사숙, 그 미친놈한테 그렇게 길게 말해봤자 소용없어요. 주국은 몇 년 전부터 요물을 길러 왔어요. 그가 요교를 포기할 리가 없죠. 방금 그 요사스러운 도사들을 다 죽여 버린 걸 보세요. 이제 우리가 가서 그놈을 두들겨 패서 울며불며 매달리게…”
노인은 우경의 머리를 한 대 퍽 치며 말했다. “맨날 싸우기만 할 생각이지, 머리를 좀 굴려 봐라! 대체 어떻게 남의 문객 노릇을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군.”
담태신이 데려온 도사들은 죽었지만, 그의 월영위와 강가에 배치된 병사들이 가만히 보고만 있을 리 없었다.
지금 묵하는 담태신의 세력권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몰래 숨어 들어온 그들 입장에서는 이미 불리한 처지였고, 무작정 싸움을 걸었다가는 오히려 전멸당하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소늠은 우경과는 달랐다. 그는 현재 상황이 어떤지를 명확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소늠은 담태신을 향해 말했다. “네가 바치는 원기가 아직 부족해서 교룡을 깨울 수 없어. 그런데도 계속 강행하려 한다면, 원기가 너무 강대해져서 통제할 수 없을 때가 올 거다. 그땐 여기 있는 모든 사람이 죽게 될 거야.”
원기는 형체가 없지만, 일단 의식을 갖게 되면 더 이상 교룡의 육신을 탐내지 않고 세상 밖으로 나가 마구잡이로 살육을 저지를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누구도 그것을 막을 수 없을 것이다.
방의지도 거들었다. “담태신, 야심과 학살은 같은 게 아니다. 네가 정정당당하게 군대를 이끌고 대하와 싸운다면, 나는 너를 남자로서 존경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요괴를 이용해서 뭘 하겠다는 거냐? 그게 대체 무슨 능력이라고 자랑하는 거냐?”
담태신은 소소를 힐끗 보더니, 이내 싸늘한 눈빛으로 방의지를 바라보며 말했다.
“다 했냐? 다 했으면 이제 전부 죽어라.”
그가 이들을 찾아간 것도 아닌데, 오히려 그들이 스스로 목숨을 내놓으러 왔다.
담태신이 손을 들어 올리자, 그의 뒤에 서 있던 수십 명의 병사들이 일제히 패검을 뽑아 들고는 스스로 목을 베었다.
계 사숙의 얼굴이 급격히 창백해졌다. “안 돼! 그는 교룡을 강제로 깨우려 하고 있어!”
과연, 원기는 흥분하며 병사들의 시체를 스치고 지나갔고, 마침내 선혈처럼 새빨간 색으로 변했다.
그것은 기괴한 웃음소리를 내며 교룡의 몸속으로 파고들려고 했다.
담태신은 거울 하나를 꺼냈다. 조금 전 조운아가 받들고 있던 옥경과 똑같은 것이었다.
거울빛이 교룡에게 비추자, 교룡과 그 품속의 진주 조개마저도 함께 흡수될 기세였다.
계 사숙은 다급하게 외쳤다. “상 아가씨!”
엽빙상은 잠시 망설이다가 입술을 깨물며 손에 들고 있던 호심린을 던졌다.
호심린이 교룡을 감싸 보호하며, 거울의 혈제 힘을 저지했다.
담태신은 짜증스러운 듯 눈살을 찌푸렸다. 교룡은 여느 요수와 다르다. 만약 완전히 깨운다면, 사흘 안에 그는 교룡을 타고 대하를 짓밟을 수 있을 것이다.
눈부신 빛이 퍼지는 가운데, 깊이 잠들어 있던 교룡이 천천히 눈을 떴다.
교룡이 얼마나 오랜 세월을 수련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한쪽 눈은 검고, 다른 한쪽은 붉었다. 검은 눈동자 속에는 희미하게 신선의 무늬가 떠올랐다.
구옥은 긴장된 목소리로 말했다. “주인님, 저 교룡이 깨어나려 해. 그는 '선'일 수도 있고 '마'일 수도 있어. 만약 두 눈이 모두 붉게 변한다면, 그것은 담태신의 것이 되어버릴 거야.”
그렇게 되면 천하는 혼란에 빠지고, 삼계가 요동칠 것이다.
소소는 물었다. “어떻게 막아야 해?”
구옥이 말했다. “교룡이 스스로 차가운 묵하의 강바닥에 잠든 건, 과거에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일이 있었기 때문이야. 교룡의 기억 속으로 들어가, 마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해줘야 해. 하지만 이 방법은 매우 위험해.”
구옥은 교룡의 다른 한쪽 눈에 퍼지는 핏빛 광채를 보며 말했다.
“주인님이 교룡의 기억 속으로 들어가면, 더 이상 자신의 기억을 갖지 못하게 될 거야. 어쩌면 그 기억 속에서 먼 옛날의 한 조각 돌이 되거나, 날아다니는 새 한 마리가 될 수도 있어.”
일단 기억을 잃으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예측할 수 없었다.
소소는 한숨을 쉬었다. “다른 방법도 없잖아.”
그녀가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자, 방의지가 그녀를 붙잡았다. “엽삼, 뭐 하는 거야?”
소소는 환히 웃으며 일부러 말했다. “죽으러 가는 거지.”
방의지는 그녀의 밝은 미소를 바라보다가, 더듬거리며 말했다. “말, 말도 안 되는 소리.”
소소는 구옥에게 물었다. “왜 얘는 얼굴이 빨개졌어?”
구옥은 어딘가 멍한 얼굴로 대답했다. “……모르겠어.”
소소는 더 이상 이 속을 알 수 없는 방 대인을 신경 쓰지 않고, 구옥의 지시에 따라 교룡을 감싸고 있는 호심린의 빛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순식간에 그녀는 하얀 빛 속으로 사라졌다.
소소의 행동이 너무 빨랐다. 계 사숙은 눈이 휘둥그레져 수염을 부풀리며 소리쳤다. “이 대담한 계집애가!”
말은 그렇게 했지만, 담태신이 이미 수많은 사람을 죽여 혈제를 바친 이상, 지금으로서는 이 방법밖에 교룡이 요괴화되는 것을 막을 방법이 없었다.
담태신의 얼굴이 어두워지며, 무언가를 떠올린 듯한 표정을 지었다. "입백우."
입백우는 그가 건네준 옥거울을 받았고, 담태신은 한마디 말도 없이 그대로 교룡을 비추고 있는 옥거울의 붉은 빛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의 목적은 소소와 정반대였다. 그는 교룡을 '마'로 만들려 하고 있었다.
엽빙상은 허공을 맴도는 호심린을 바라보며 창백한 얼굴이 되었다. 본능적으로 그것을 다시 손에 쥐려 했으나, 호심린은 더 이상 그녀의 통제를 받지 않았다. 순간 숨이 멎을 듯했고, 안에 있을 엽석무가 떠올랐다.
엽빙상은 이를 악물고, 역시 하얀 빛 속으로 발을 내디뎠다.
한 손이 재빠르게 그녀를 붙잡았다. "빙상……"
엽빙상은 설명할 수 없었다. 그저 애절한 눈빛으로 소늠을 돌아보며 말했다. "죄, 죄송해요, 전하."
소늠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지만, 손을 놓지 않았다. 그러자 하얀빛이 그들 모두를 삼켜버렸다.
계 사숙은 무표정하게 묻는다. "너는 안 가냐?"
우경은 고개를 마구 흔들었다. "안 가요!"
사숙과 조카가 대화를 끝내기도 전에, 옆에서 또 다른 사람이 안으로 뛰어드는 모습이 보였다.
계 사숙은 눈을 부릅뜨며 외쳤다. "저 방의지는 또 뭐야? 도대체 왜 들어간 거야?"
우경은 의미심장하게 눈썹을 치켜올렸다. "혹시 마음에 둔 사람이 들어가서, 걱정되는 거 아닐까요?"
계 사숙은 화가 나서 자기 수염을 잡아당겼다. "목숨도 아까워하지 않는 녀석들 같으니!"
교룡의 과거 기억, 그것을 '반야부생'이라 불렀다!
그들은 그곳이 그렇게 쉽게 들어갈 수 있는 곳이라 생각하는가?
조심하지 않으면 하나같이 현세를 잊고, 바보가 되어 돌아올 것이다!
우경은 손가락으로 셈을 했다. "엽 삼소저도 우리 사람이죠? 그럼 우리 측에서 들어간 사람이 넷, 담태신 쪽은 한 명. 우리 승산이 크네요!"
그 말에 맞은편의 입백우가 눈살을 찌푸렸다.
우경은 장난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계 사숙, 빨리! 빨리! 결계를 쳐서 담태신 쪽 사람이 더 못 들어가게 해야죠!"
계 사숙은 이를 알아채고는 재빨리 몸에 지니고 있던 보물들을 꺼내, 대항하는 원기 옥거울과 호심린을 감쌌다.
입백우의 얼굴이 분노로 일그러졌다. "폐하…… 너희들!"
우경은 크게 웃었다. "하하하!"
계 사숙도 덩달아 웃으며 맞장구쳤다. "헤헤!"
입백우는 이쪽에 요괴를 퇴치할 도사와 제령사가 없다는 사실에 이를 갈았다. 도무지 저 두 사람을 상대할 방법이 없었다.
허공에서 두 개의 물건이 격렬히 맞부딪치고 있었다. 모두가 숨을 죽이고 그것들을 주시했다.
심지어 계 사숙조차도 마음이 흔들렸다.
전설로만 전해지는 '반야부생' 속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인가?
"그 여자, 부끄럽지도 않나?"
"조금이라도 염치가 있다면 스스로 물러났어야지. 상청선경이 대체 어떤 곳인데, 감히 조그만 조개 요괴가 머물 자리가 된단 말이야? 듣자 하니 그녀는 인간계의 묵하 출신이라던데, 묵하가 어떤 곳인지 아나? 그 검고 탁한 물은 보기만 해도 속이 메스꺼워져서 며칠은 기분이 가라앉는다지."
"그 말은 틀렸어. 어쨌든 그 여자는 염치없게도 명야신군과 혼인했잖아. 신군은 지금 상청의 주인이고, 우리도 그녀를 주군이라 불러야 해."
그 조소는 곧 폭소로 이어졌다.
"누구나 다 알지 않나? 신군은 그 여자를 지독하게 싫어한다고. 결혼한 지 백 년이 다 되어가는데 그녀가 사는 정원에조차 발을 들인 적이 없어. 신군은 성녀를 위해 그녀와 결혼한 거야. 지난 백 년 동안 신군은 외부에서 수많은 천재지보를 찾아 헤맸어. 성녀를 되살리기 위해서. 듣자 하니 며칠 내로 성녀가 깨어난다던데, 그럼 조개 요괴 따위가 머물 곳이 어디 있겠어?"
이 조롱을 들으며 소소와 함께 반야부생에 들어온 구옥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묵하 강바닥에서 잠들어 있던 그 요괴가, 뜻밖에도 만 년 전의 상청선경 출신이었다니.
만 년 전, 그 교룡은 용으로 변화하기 직전까지 도달한 존재였다. 신성한 교룡은 강력한 힘을 지니고, 여러 차례 선병을 이끌고 마족과 전쟁을 벌였다. 후에는 상청선경의 주인이 되었으며, 그의 이름은 명야였다.
백여 년 전, 명야는 암습을 받았다. 그가 키운 성녀가 그를 대신해 공격을 막아냈고, 둘은 인간계의 묵하로 추락했다.
그들을 발견한 이는 조개족의 어린 공주, 상주였다.
상주는 목숨이 위태로운 그들을 구해주었으나, 명야는 살아남았고 성녀는 생명이 위태로웠다.
조개족은 조건을 내걸었다. 명야가 상주와 혼인한다면, 보물을 사용해 성녀를 살려주겠다고.
명야는 동의했다.
그렇게 상주는 상청에서 백 년을 보냈다. 그러나 명야는 단 한 번도 그녀를 눈여겨보지 않았다.
명야뿐만 아니라, 상청 전체가 상주를 혐오했다. 그들 눈에 조개족은 탐욕스러웠고, 신군을 협박하는 족속에 불과했다.
조개족 또한 도를 닦을 수 있었으나, 그들의 수련은 깊지 않았고 본성이 게을렀다. 그래서 상청에서는 상주를 '조개 요괴'라며 멸시했다.
백 년 동안 그녀는 극도로 비천한 존재였다. 그녀의 도려는 잠든 성녀를 위해 천재지보를 찾아 헤맸고, 그녀는 작은 대나무집에서 홀로 사람들의 비웃음을 견뎠다.
그리고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상주'는 갓 세탁한 얇은 비단을 품에 안은 채 또다시 그녀들을 향한 조롱을 들었다.
'상주'는 분홍빛의 인어의 비늘로 만든 안개 같은 옷을 입고 있었고, 하얗고 여린 두 발은 맨발이었다. 발목에는 작은 방울이 묶여 있었다.
그녀는 맑고 순수한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이 모습은 상청의 선녀들에게 몹시 천박하게 보였다.
그들은 그녀를 일부러 창피 주려는 듯 더욱 목소리를 키웠다.
구옥은 점점 걱정이 깊어졌다.
반야부생 속에서 소소가 조개 요괴의 신분으로 나타날 줄은 구옥조차도 예상하지 못했다.
이 신분이 나쁘다고 할 수도 없었다. 적어도 단순한 잉어 한 마리나 강바닥의 돌덩이가 되는 것보다는 나았으니까. 하지만 좋다고도 할 수 없었다.
상주는 상청선경에서 가장 처지가 열악한 존재였다. 다른 이들에 비해 수련이 부족했고, 늘 괴롭힘을 당했다.
그녀는 교룡 명야를 사랑했으나, 명야는 그녀를 혐오했다.
그리고 가장 최악인 것은, 곧 성녀가 깨어날 것이라는 점이었다.
만약 소소가 조금만 더 운이 좋았더라면, 반야부생 속에서 성녀의 역할을 맡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교룡을 깨우는 일이 훨씬 쉬워졌을 텐데.
구옥은 '상주'라는 이름을 가진 소소를 바라보며 착잡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반야부생이란 그런 곳이었다. 소소는 자신이 리소소였다는 것을 기억하지 못한다. 지금의 그녀는 오직 '상주'일 뿐이었다.
구옥이 그녀를 따라 들어오긴 했지만, 말할 수도 없었고 그녀에게 어떠한 힌트도 줄 수 없었다. 지금의 구옥은 그저 하나의 평범한 옥팔찌일 뿐이었다.
소소는 발걸음을 멈췄다.
주위의 선녀들은 그녀가 예전처럼 낙담한 채 눈물을 떨굴 거라 생각했지만, 예상과는 전혀 달랐다.
소소는 갑자기 몸을 돌려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너희가 내가 주군이라는 걸 알고 있다면, 입을 닫는 것이 예의겠지. 설령 명야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 해도, 나는 상청의 여주인이야."
그 말을 끝마치며 그녀는 손에 들고 있던 나무 대야를 홱 들어 올렸다.
축축한 비단이 허공으로 흩날리더니, 가장 입이 험한 선녀의 머리 위로 덮였다.
"꺄악!"
그녀들은 비명을 지르며 비단을 찢어냈고, 얼굴이 분노로 일그러졌다.
"너… 너…!"
소소는 일부러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래, 난 너희를 이길 힘은 없어. 하지만 명야는 규율을 가장 중시하는 사람이야. 너희가 감히 나에게 손을 대기라도 하면, 내일 아침이면 상청에서 쫓겨나게 될 거다!"
선녀들은 얼굴이 붉어지도록 화를 냈지만, 소소는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았다.
그녀는 나무 대야를 품에 안고, 흩어진 비단은 신경 쓰지도 않은 채 대나무집으로 돌아갔다.
방에 들어서자, 그녀의 얼굴에서 금세 웃음기가 사라졌다.
소소는 탁자에 앉아 멍하니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밤이 깊어지고, 하늘에 달이 떠올랐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화려한 금박이 새겨진 단정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신발도 제대로 갖춰 신고, 손에는 유리로 된 등불을 들었다.
상청선경은 항상 안개로 덮여 있었다.
소소는 손을 휘저어 안개를 헤치며, 익숙하면서도 낯선 궁전으로 향했다.
걸음을 옮길수록 가슴이 점점 더 먹먹해졌다.
마침내 저 멀리 환한 불빛이 보이자, 그녀는 가슴을 문지르며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사람들은 말했다.
성녀가 곧 깨어난다고.
그녀가 깨어나면, 명야는 더욱더 자신을 미워하게 될 것이다.
소소는 마음이 몹시 괴로웠다. 이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힘들었고,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아 당장이라도 돌아서고 싶었다. 하지만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묵하 강 아래 있는 아버지와 백성들이었다. 그녀는 돌아설 수 없었다.
소소는 유리등을 들고 앞으로 나아갔다. 궁전 앞에서 작은 선녀 시녀들이 그녀를 보고 몸을 굽혀 예를 올렸다. 행동은 공손했지만, 그 눈빛에는 경멸이 서려 있었다.
상청선경에서 상주는 마치 가장 더러운 존재인 것처럼 취급받았다. 만약 명야가 엄격하게 규율을 지키지 않았다면, 그녀는 아마 진작에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엄격한 규율 때문에, 그녀는 도리어 그에게 작은 희망을 품곤 했다.
시녀가 말했다.
"신군께서 공주께서는 직접 안으로 들어가도 된다고 하셨습니다."
소소는 시녀의 말투에 신경 쓰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며 유리등을 들고 궁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검은색 백조 자수가 새겨진 병풍 너머로 누군가가 다리를 포갠 채 앉아 있는 모습이 희미하게 보였다.
그를 보자, 소소의 심장이 본능적으로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마음속에는 은근한 기대와 기쁨이 피어올랐다.
그러나 자신이 이곳에 온 이유를 떠올리자, 다시 기운이 빠지며 어깨가 축 처졌다. 그녀는 단정히 무릎을 꿇고 공손하게 말했다.
"신군님, 부디 사리자를 빌려 주십시오. 조개족이 한 번만 사용하게 해 주세요."
묵하 강은 십 년마다 한 번씩 물이 불어나 강바닥이 흔들렸다. 그때마다 수많은 하병과 게장수들이 목숨을 잃었다.
아까 그 입이 거친 선녀들이 묵하 강이 더럽고 악취가 난다고 한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 말이 너무나 가슴 아프지만,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명야가 아무리 자신을 혐오한다고 해도, 십 년이 지나면 소소는 다시 이렇게 얼굴을 두껍게 하고 사리자를 빌리러 와야만 했다.
병풍 너머에서 남자가 천천히 눈을 떴다.
그의 목소리는 차갑고, 심지어 냉담하기까지 했다.
"오늘은 안 된다. 사리자는 아홉 날 후에 빌려주마."
소소는 다급해졌다.
"하지만 내일이면 묵하의 강이 범람합니다. 사리자가 없으면 큰일이 날 거예요!"
그러나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천환이 곧 깨어난다. 그녀를 위해 사리자로 탁기를 정화해야 한다."
'천환'이라는 이름을 듣자, 소소의 입안이 씁쓸해졌다.
예전 같았으면 그저 체념하고 말았을 것이다. 천환 성녀와 경쟁할 수도 없었고, 감히 경쟁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아니었다.
소소가 사리자를 얻지 못한다면, 절대 그냥 돌아갈 수 없었다.
그녀는 입술을 꾹 깨물고 고개를 들어 올렸다.
"명야, 제발 부탁이야. 사리자를 빌려줘. 딱 한 번만 쓰고, 바로 돌려줄게."
병풍 너머에서 남자가 싸늘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이제까지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데, 아직도 규율을 모르는군."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진법의 현광이 소소의 어깨를 강하게 내리쳤다.
"윽!"
소소는 억눌린 신음을 흘리며 뒤로 휘청거렸다.
병풍 뒤에서 남자는 금빛 옷을 입은 소녀가 천천히 얼굴을 들고, 입가의 피를 훔치며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보았다.
소소는 장난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명야라고 부르면 안 된다면, '부군'이라고 부르지 뭐. 당신이 오늘 나를 때려죽인다 해도, 난 사리자를 반드시 가져갈 거야."
그녀는 속으로 이를 악물었다.
망할 천환 성녀.
오늘 사리자를 얻지 못하면, 차라리 천환과 함께 죽어버리겠다.
소소는 땅에서 일어나 병풍을 돌아 나왔다. 더 이상 쓸데없는 규율 따위 신경 쓰지 않고, 바로 그를 노려보았다.
그 순간, 남자의 모습을 본 소소는 충격을 받아 말을 잃었다.
구옥 또한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크게 뜨고 경악했다.
누가 이 상황을 설명해 줄 수 있을까?
눈앞의 이 남자가, 담태신과 똑같이 생겼다는 게 도대체 무슨 일이란 말인가?!
설마, 정말 자신이 생각하는 그대로일까?
담태신이 반야부생 속에서 대신한 존재가 하필이면 이 신령한 교룡이라니. 한 생각으로 불성을 이룰 수도, 한 생각으로 마성이 될 수도 있는 존재라니!
이제 모든 결정은 그에게 달린 셈이었다.
구옥은 절망했다.
이렇게까지 하늘을 거스를 수 있는 일이 또 있을까?
그러나 말을 할 수 없는 구옥은 절망 속에서 갑자기 한 가지 희망을 떠올렸다.
담태신이 지금 이 신령한 교룡의 역할을 하고 있다면, 혹시 교룡의 감정까지도 느낄 수 있는 것 아닐까?
담태신은 원래 감정을 가지지 않았지만, 교룡은 감정을 가진 존재다.
복은 화를 품고, 화는 복을 품는다 했던가.
어쩌면 이번 반야부생을 통해 소소가 무사히 사골을 뽑아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구옥은 기쁨을 느꼈다. 더 이상 절망할 필요가 없었다.
모든 것은 이번 기회에 달려 있었다.
한편, 명야의 깊고 어두운 눈동자 속에는 지금의 소소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소소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당신이 나를 싫어하는 거 알아. 사리자를 주면, 당장 떠날게."
그러나 명야는 미동도 없이 그녀를 바라볼 뿐이었다.
"상주, 본군이 널 죽이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지 마라."
소소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당연히 그러겠지. 넌 충분히 나를 죽일 수 있어.'
그는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
그러니, 자신을 아낄 리도 없었다.
소소는 품 속에서 분홍빛 진주를 꺼냈다.
그 진주는 유난히 아름다웠다. 손바닥의 반을 차지할 정도로 컸으며, 은은한 빛이 감돌고 있었다.
소소는 긴장한 채로 입술을 살짝 핥았다.
이제 곧 큰일을 저지를 참이었다.
"알아. 넌 천환을 위해 영수를 구하다가 부상을 입었지. 그리고 내일은 또 친히 군대를 이끌고 연마를 토벌하러 가야 해.
나는 널 해치려는 게 아니야.
나는 그저 사리자가 필요할 뿐이야."
그 말을 끝으로, 소소는 손에 쥔 분홍빛 진주를 단숨에 부쉈다.
산산이 부서진 진주 가루가 미세한 먼지가 되어 법진을 뚫고 명야의 몸 위로 흩날렸다.
소소는 비록 수련이 부족했지만, 백 년 동안 정성 들여 키워낸 이 진주 하나만큼은 있었다. 부상을 입은 신군을 잠시나마 묶어두는 것 정도는 가능했다.
사실 명야가 이렇게까지 자주 다치게 된 것도, 매번 천환을 위해 목숨을 걸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상청의 사람들은 대부분 소소를 하찮은 존재로 여겼다. 개미만도 못한 존재처럼 취급했고, 명야조차도 그녀를 경계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는 이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소소는 명야의 침상 위로 기어올랐다.
차가운 눈동자가 그녀를 향해 돌아왔다.
그는 그녀가 겁을 먹을 거라고 생각했다.
백 년 동안, 그가 화를 낼 때마다 소소는 단 한순간도 버티지 못하고 바로 물러났으니까.
하지만 이번만큼은 달랐다.
소소는 물러서지 않았다.
두 볼이 발갛게 달아오른 채,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일부러 그런 건 아니야. 실례할게."
그녀는 그의 옷을 풀었다.
그러자 남자의 넓고 탄탄한 가슴이 드러났다.
소소의 하얀 손가락이 그의 심장 부근을 톡 하고 눌렀다.
명야의 숨결이 거칠어졌다.
순전히 화가 나서였다.
"오늘 네가 사리자를 가져가서 천환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다시는 상청으로 돌아오지 마라. 상청의 모든 이들이 널 죽이려 들 것이다."
소소의 속눈썹이 살짝 떨렸다.
촉촉한 눈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금방이라도 눈물이 떨어질 듯한 눈망울이었지만, 입술은 고집스럽게 움직였다.
"안 돌아오면 그만이지. 어차피 천환이 깨어나면, 너는 나를 죽이고 싶어 안달일 텐데."
명야의 눈빛이 깊어졌다.
그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소소는 사리자를 꺼냈다.
황금빛 사리자가 그녀의 손바닥에 닿자마자, 그녀는 재빠르게 조개껍데기에 넣어 소중히 감쌌다.
그녀는 그의 맞은편에 앉아 눈을 비비며 조용히 말했다.
"백 년 동안, 이렇게 가까이에서 널 보는 건 처음이야.
지금 넌 나를 죽이고 싶겠지. 그래, 차라리 잘됐어. 어차피 이제 나도 널 좋아하지 않을 거니까.
상청에서는 모두가 나를 요괴 취급했어."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그녀는 고개를 숙여 그의 시선에서 그것을 숨겼다.
"하지만, 나는… 나는…
묵하에서는 공주였어."
그녀는 고개를 들었다.
눈빛은 강렬하게 빛났고, 두려움과 대담함이 뒤섞여 있었다.
"넌 날 버렸어.
그럼 이제 나도 두려울 게 없어."
이를 지켜보던 구옥은 속으로 외쳤다.
'뭐야, 뭐야! 작은 주인님 지금 뭐 하려는 거야?!'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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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 출처 : 구글, 티빙, YOUK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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