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글은 드라마 장월신명을 보고 원작 소설이 있다고 해서 찾아봤는데, 국내에서는 출간돠지 않아서. 중국어 본을 찾아보게 되었고 제가 보기 위해 한국어로 번역했습니다, 궁금해 하시는 블러그 이웃분들이 많아, 블러그에 적게 되어, 혹시라도 저작권 문제가 생긴다면 이 블로그의 글은 추후에 비공개 될수 있음을 미리 말씀 드립니다.
장월신명 원작소설 [黑月光拿稳] 흑월광나온(한국어 번역)
25장. 살의
소소도 자신이 얼마나 오래 헤엄쳤는지 몰랐다.
강물은 얼음처럼 차가웠고, 작은 얼음 조각들이 그녀의 피부를 스쳐 지나가며 베어냈다. 굳어버리고 마비된 팔다리는 더 이상 통증을 느낄 수도 없었다.
그녀는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속도는 점점 느려졌지만, 멈출 수 없었다.
갑자기 물을 들이켜며 숨이 막혔다. 허둥대던 순간, 소소는 떠내려가던 나무 조각을 가까스로 붙잡았다. 몸의 절반은 나무 위에 기댔고, 나머지 절반은 차가운 물속에 잠긴 채 힘없이 떠내려갔다.
하늘에서 다시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눈송이가 그녀의 뺨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소소는 눈을 감았다.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도 없었다. 극도의 피로감이 그녀를 잠식했고, 그녀는 그 자리에서 깊이 잠들어버렸다.
누군가 조심스럽게 그녀를 안아 올렸다. 곧 몸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꼈다.
얼마나 지났을까.
소소가 다시 의식을 되찾았을 때, 거리에서 울려 퍼지는 장사꾼들의 외침과 징 소리, 아이들의 신나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누군가 낮은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소소는 눈을 떴다.
부드러운 침대 위에 누워 있었다.
옆에는 낮은 창문이 있었고, 방 안에서는 화로의 숯불이 타닥타닥 타오르고 있었다.
소소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탁자에 앉아 있는 두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선왕전하, 우경?"
우경이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다.
"깨었네? 기분은 어때?"
소소는 물었다.
"당신들이 여긴 어쩐 일이죠?"
우경은 부채를 펴더니, 소소에게 소늠을 가리켰다.
"그건 우리 사형한테 물어봐야겠지. 사형이 네가 칠미호한테 죽을까 봐 노심초사하다가, 나까지 끌고 강을 따라 추적하러 왔거든. 둘이 배를 타고 며칠을 쫓아갔는데, 강 위에서 네가 나무 토막 붙잡고 기절해 있는 걸 발견했어. 운이 좋았지. 조금만 더 늦었으면 얼어 죽을 뻔했어."
소소는 진심으로 말했다.
"정말 감사합니다."
소늠이 말했다.
"삼소저, 우경의 말을 곧이곧대로 듣지는 마시오. 우리의 목숨을 구해준 건 오히려 삼소저 였소. 그러니 감사해야 할 사람은 나와 우경이지. 도의적으로나 감정적으로나, 삼소저의 안전을 지켜야 하는 게 당연한 일이기도 하고."
우경이 물었다.
"그런데 대체 왜 강물에 빠져 있던 거야?"
소소가 대답했다. "담태신이 나더러 오라버니에게 편지를 써서 그들을 가욕관으로 통과시켜 달라고 했어요. 그래서 강물에 뛰어들어 도망쳤죠."
우경은 감탄하며 말했다. "너희 부군(남편) 참 대단하네." 그 말에 비꼼은 없었다. 그는 진심으로 담태신이 깊은 속내를 감추고 수년간 치욕을 견뎌왔다는 점에서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예전에 자신과 조왕도 그가 이렇게 냉혹한 인물일 줄은 몰랐다.
소소는 다급하게 물었다. "오라버니는 어떡해요? 별일 없는 거죠?"
소늠이 소소에게 따뜻한 차를 따라주며 말했다. "너는 이틀이나 잤어. 담태신의 배는 이미 가욕관을 통과했어. 엽 소장군은 독에 중독돼서 황성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고 있어."
소소의 얼굴이 창백해지는 것을 본 소늠은 안심시키듯 덧붙였다. "걱정하지 마. 생명을 위협하는 독은 아니야. 황성에 도착하면 곧 나아질 거야."
소소는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이었다. 적어도 나라를 배신할 필요는 없었고, 엽청우의 목숨도 건질 수 있었다.
그녀는 차를 마셨고, 소늠은 다정하게 그녀를 위해 음식을 주문해 주었다.
소소는 배가 너무 고팠던 터라, 그릇을 들고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우경은 흥미롭게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전에 들은 바에 따르면, 엽 삼소저는 눈에 뵈는 게 없고 거만하다던데, 어째서 너는 소문과 이렇게 다르지?"
그들이 엽 삼소저를 발견했을 때, 그녀는 거의 얼어붙은 작은 얼음 인간 같았다. 작은 여인의 몸으로 감히 한겨울의 강물로 뛰어들다니, 그런 용기는 웬만한 남자들도 갖기 힘든 것이었다.
소소는 웃으며 말했다. "나도 들었어요. 조왕의 문객 우 선생은 성품이 온화하고, 우아한 군자라고요. 우 선생, 당신도 소문과 차이가 꽤 큰데요?"
그러니 소문은 믿을 게 못 됐다.
우경의 얼굴이 굳어졌고, 콧방귀를 뀌었다.
소늠은 그런 소소를 보며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소소가 말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그 칠미호는 어떻게 할 건가요?"
소늠이 대답했다. "이미 내 사숙과 연락을 취할 방법을 마련했어. 그분이 해결책을 가지고 있을 거야."
소소는 불안했지만, 이 방법 밖에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녀는 반드시 황연으로 가서 황연을 지키는 신을 찾아야 했고, 칠미호의 일은 소늠의 사숙에게 맡길 수밖에 없었다.
지금 자신의 실력으로는 그 여우 요괴를 상대할 방법이 없었다.
소소가 식사를 마치자, 소늠이 말했다. "엽 삼 소저, 여긴 청수진이야. 황성까지는 닷새 거리야. 네가 충분히 쉬고 나면, 함께 돌아가자. 걱정 마. 담태신의 일은 부황께서 총명하게 판단하실 거고, 대장군께서는 충성스럽고 강직한 분이시니, 네 가족에게 해가 미치지는 않을 거야."
소소는 급히 말했다. "저는 아직 할 일이 있어서 당장은 돌아갈 수 없어요. 선왕 전하, 그리고 우 선생, 저희 아버지와 할머니께 제 안부를 전해 주세요. 저는 무사하다고, 일이 끝나면 곧 집으로 돌아가겠다고요."
"삼 소저, 무슨 일이길래 그러는거지? 혹시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인가?"
그는 흰옷에 검은 머리를 늘어뜨린 채, 진지한 표정이었다. 그 모습에서 소소의 생명을 구해준 일에 대한 진정한 보답의 뜻이 느껴졌다.
소소는 마음이 따뜻해졌다. 이 세계에 오기 전, 아버지는 혹시라도 옛 인연을 만나게 되면 담담하게 대하라고 당부했었다.
소소의 대사형은 공야적무(公冶寂无)로, 인간 세상의 귀족 자제였다. 그는 열두 살에 선문(仙门)에 입문하여, 필부의 몸으로 수련해 화신기(化神期)에 도달했다. 겨우 삼백여 세의 나이로 그 경지에 오른, 명실상부한 천재였다.
소소의 계산이 틀리지 않았다면, 소늠이 바로 대사형의 전생일 터였다.
하지만 '전생'이라는 말이 그리 유쾌하게 들리지는 않았다. 한 사람이 다시 태어나려면 반드시 죽어야 하고, 영혼이 소멸하지 않아야만 환생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소소가 멍하니 소늠을 바라보자, 우경이 농담조로 말했다. "야, 꼬마 아가씨, 뭐 그렇게 뚫어지게 봐? 아직도 우리 사형을 잊지 못하는 거야?"
소늠이 낮은 목소리로 꾸짖었다. "우경!"
우경은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알았어, 알았어. 내가 주책맞았어. 입 다물게."
소소는 급히 손을 저었다. "선왕 전하, 오해하지 마세요. 방금 잠시 생각에 빠졌을 뿐이에요. 예전에는 제가 철이 없었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아요."
소늠은 고개를 끄덕이며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나도 알고 있어. 삼 소저는…… 예전과 많이 달라졌구나. 우경이 입이 거칠지만, 너무 신경 쓰지 말게."
소소는 배를 채운 뒤에서야 자신의 옷이 바뀌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우경이 설명했다. "객잔 주인의 딸이 갈아입혀 준 거야. 안심해, 우리라고 네게 실례를 범할 리 없잖아."
소소는 이제 다시 기운을 되찾고 활력을 되살렸다.
소소는 소늠에게 지나치게 예의를 차리지 않았다. 지금 그녀에게는 정말 도움이 필요했으니까.
그녀는 말했다. "저는 아주 먼 곳으로 가야 해요. 오랜 시간이 걸릴 수도 있어요. 선왕 전하께서 괜찮으시다면, 은자를 조금 빌려주실 수 있을까요? 편지를 한 통 써서 춘도(春桃)에게 전하께 보내게 하겠습니다."
소늠은 품에서 몇 장의 은표를 꺼냈다. 소소가 보니, 세상에, 몇천 냥은 돼 보였다.
소소는 그중 한 장만을 집었다. "이 정도면 충분해요. 전하, 우 선생, 부디 건강하십시오."
운명을 바꾸는 이 길에 동행할 사람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지만, 소소는 알고 있었다.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소늠은 아직 공야적무가 되지 않았다. 그는 대하(大夏)의 황자이고, 두 나라가 곧 전쟁을 앞두고 있었다.
그에겐 황자로서의 사명이 있었다. 그리고 소소의 사명은, 애초부터 외로운 길로 정해져 있었다.
그녀는 두 사람에게 손을 흔들고, 객잔 계단을 내려갔다.
우경은 그녀의 자유로운 뒷모습을 바라보며 장난스럽게 말했다.
"사형, 저 소저, 참 생명력이 넘쳐나. 묘하게 귀엽기도 하고. 만약 처음부터 지금 같은 모습이었으면, 그녀와 혼인했을 것 같아?"
소늠은 미간을 찌푸리며 짧게 답했다. "경거망동하지 마라."
'만약'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들의 시야 속에서, 그녀는 밤색의 조랑말 한 필을 사더니 바람과 눈보라 속으로 사라졌다.
"우리가 고향을 떠난 지 얼마나 됐지?"
형란안은 손을 뻗어 눈송이를 받으며 멍한 표정을 지었다.
가욕관(嘉峪关)을 넘은 지 닷새째, 그들은 마침내 주국(周国)의 국경에 도착했다.
이제 주국으로 더 깊이 들어갈수록, 날씨는 점점 따뜻해질 것이다.
형란안의 손바닥 위에서 눈송이가 녹아내렸다. 어쩌면 이곳에서 보는 마지막 눈이 될지도 몰랐다.
담태신이 물었다. "란안 고모, 주국이 그리운가?"
"그리운 것은 아니지만, 낙엽이 결국 뿌리로 돌아가듯이, 사람은 태어난 곳에 대한 연이 있는 법이지요. 오랜만에 고향 땅을 밟으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형란안은 말을 이었다.
"그러고 보니, 전하께서 얼마 전 저에게 결춘잠(结春蚕)을 원하셨죠. 그런데 결춘잠의 해독제는 조제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우리 부족의 성녀가 며칠 전 남아 있던 설련(雪莲) 꽃잎을 이용해 겨우 한 병을 만들었어요. 전하, 필요하십니까?"
그녀는 정교한 청옥 도자기 병을 꺼내 들었다. 하지만 담태신이 그 결춘잠을 누구에게 사용했는지는 묻지 않았다.
담태신은 병을 받아 들었다. 도자기 병은 따뜻했다.
그는 무심코 손가락으로 병을 매만지다가, 이내 말했다. "필요 없다."
그리고는 해독제를 강물 속으로 던져 버렸다.
.
"전하, 한 수 두어 보시겠습니까?"
"좋지."
담태신은 망토 자락을 젖히며 형란안의 맞은편에 앉았다.
형란안은 흑돌을, 담태신은 백돌을 들었다.
"전하, 저는 그동안 대하(大夏)에서 있었던 일들에 대해 깊이 묻지 않았습니다. 그 옛날 제가 유씨(刘氏)를 보내 전하를 돌보게 했는데, 나중에 들으니 그녀가 미쳐 버렸다더군요."
형란안은 돌을 하나 내려놓으며 물었다. "그녀는 전하를 잘 보호했었나요?"
담태신도 조용히 돌을 내려놓았다. 단단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차가운 궁궐에서 미쳐 버린 유모를 떠올리며, 담태신은 표정을 바꾸지 않은 채 말했다.
"고모는 혹시 내가 그녀를 미치게 만들었다고 의심하는건가?"
형란안은 잠시 침묵하다가 말했다. "아닙니다, 그럴 리가요."
담태신은 손안에서 바둑돌을 굴리다가, 불현듯 충격적인 말을 내뱉었다.
"하지만 고모의 의심이 틀린 건 아니군."
형란안의 표정이 얼어붙었다.
"처음에 그녀는 미치지 않았어. 오히려 나를 보호하려 했지. 언젠가는 내가 주국으로 돌아가 다시 황자가 될 거라 믿으며, 그날을 기다렸어. 그럼 그녀도 고생 끝에 좋은 날을 맞을 수 있을 거라고 말이지."
담태신의 목소리는 냉담했다.
"참으로 가련한 생각 아닌가? 지옥 한가운데에 있으면서도, 언젠가 그곳을 벗어날 수 있을 거라고 믿다니. 하지만 냉궁(冷宫)의 시간은 너무 길었다. 결국 그녀도 그 믿음이 어리석었다는 걸 깨닫게 되었지."
그는 가볍게 한 수를 두었다.
"대하의 오황자(五皇子)는 어린 소년들을 좋아했다."
담태신이 이 말을 내뱉는 순간, 형란안의 얼굴빛이 확 변했다.
"전하… 전하."
담태신은 또 한 수를 두며 낮게 웃었다.
"유씨는 내 음식에 뭔가를 섞었다. 안타깝게도, 그날의 식사는 너무 호화로웠지. 호화로워서, 도저히 내가 감당할 수 없었어. 그래서 내가 먹지 않고, 그녀에게 먹였다. 그리고 그녀를 절계원(折桂苑)으로 데려갔지."
담태신은 턱을 괴고,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란안 고모, 절계원이 어떤 곳인지 아는가? 궁 안에서 가장 추악한 환관들이 모여 사는 곳이다."
그는 연민이 어린 미소를 지으며 마지막 말을 덧붙였다.
"유씨는 그곳에 들어갔다가, 돌아올 때는 이미 미쳐 있었다."
형란안은 눈을 감고 비통한 목소리로 말했다. "전하, 제 잘못입니다."
담태신은 고개를 저으며 마지막 돌을 내려놓았다.
"당신이 졌습니다."
형란안은 바둑판을 바라보았다. 흔히들 바둑을 인생에 비유하곤 한다. 돌을 두는 방식만 봐도 그 사람의 성격이 드러나기 마련이었다.
담태신의 수는 매서웠다. 그는 병졸들의 희생을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그의 돌들은 많이 사라졌다.
하지만 결국 승자는 그였다.
담태신은 더 이상 둘 생각이 없는 듯 자리에서 일어나, 말없이 선실로 돌아갔다.
형란안은 흩어진 바둑돌을 하나하나 바둑통에 담았다.
그녀는 담태신을 키웠다. 하지만 그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예를 들어 소소의 일만 해도 그랬다. 소소가 강물에 뛰어들었을 때, 형란안은 담태신이 사람을 보내 그녀를 쫓거나 구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동안 그는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그 냉담함에 형란안의 손끝이 싸늘해졌다.
어둠이 깔리려는 무렵, 물 위로 또 한 척의 배가 희미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형란안은 뱃머리에 서서 그 배를 바라보았다. 누군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부인, 접선할 사람들입니다."
형란안은 조용히 말했다. "며칠간의 여정으로 전하께서 피곤하실 테니, 푹 쉬게 해드려라. 주방에 일러 오늘 밤은 진수성찬을 준비하도록 하거라. 전에 내가 샀던 명기(名伶.기생)는 어디 있느냐?"
얼마 지나지 않아 요염하고 아름다운 여인이 형란안 앞에 부드럽게 엎드렸다.
형란안은 나직이 말했다. "듣자 하니 아직 순결을 잃지 않았다면서. 하지만 해야 할 것은 다 알고 있겠지. 전하를 잘 모셔라. 기분이 좋으셔야 한다."
석금은 부끄러움과 설렘이 뒤섞인 얼굴로 나직이 대답했다. "예."
그녀는 이미 전하를 본 적이 있었다. 너무나도 아름다운 그 얼굴 앞에서 자신조차 초라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런 남자와 함께할 수 있다니, 가슴이 두근거렸다.
석금이 우아하게 물러난 뒤, 시녀가 형란안 옆으로 다가와 조심스럽게 물었다.
"전하께서 사용하실까요?"
형란안은 무심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상관없다."
그녀는 손가락으로 가슴 한가운데를 톡톡 두드리며 말했다. “여기엔 아무도 없어. 그러니 모든 것이 무의미하지.”
하지만 만약 마음속에 누군가 있다면.
형란안은 생각했다. 어쩌면, 일이 이렇게까지 절망적으로 흘러가지 않을 수도 있을 텐데.
석금은 조용히 방문을 밀어 열었다.
방 안에는 검은 옷을 입은 소년이 있었다. 그는 다리를 접고 침상 위에 앉아 있었다. 눈을 감고 있는 그의 검은 속눈썹은 흡사 칠흑 같은 까마귀 깃털 같았다.
누군가 들어오는 소리에 그는 천천히 눈을 떴다.
석금은 수많은 남자를 접해 보았지만, 단 한 번도 누군가의 시선에 다리가 후들거리는 경험을 해본 적이 없었다.
두려움이 엄습했지만, 동시에 그녀는 더욱더 이 남자에게 매혹되었다.
그녀는 무릎을 꿇고 천천히 그에게 다가갔다.
붉은 입술이 살짝 떨리며 애처로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부인께서 전하를 모시라고 하셨습니다.”
담태신이 무심하게 말했다. “란안이 널 보냈다고?”
“예.” 석금은 심장이 터질 것 같은 감정을 애써 누르며 허리띠를 풀었다.
차가운 공기가 피부를 스쳤다.
그녀는 완벽한 몸매를 가졌고, 눈부시게 하얀 피부를 지니고 있었다. 어떤 남자라도 유혹할 수 있는 그런 몸이었다.
석금은 담태신의 눈에서 강렬한 욕망을 기대했지만, 그는 아무런 감정도 담기지 않은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마치 한 덩어리의 죽은 고기를 보는 듯한 시선이었다.
그녀는 애써 그를 유혹하려 했지만, 그는 한치의 미동도 없었다.
그의 얇은 입술이 희미하게 올라갔다. “왜? 놀랐어?”
석금은 순간적으로 혼란에 빠져 황급히 무릎을 꿇었다.
그녀는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여자의 몸을 보고도 아무런 반응이 없는 전하는 혹시……
그때, 담태신이 손을 들었다. 그리고 붉은 피 한 방울이 석금의 어깨 위로 떨어졌다. 그러자 그녀의 몸에서 검은색의 기괴한 벌레가 기어나왔다.
석금은 그것을 보고 비명을 지르려 했지만, 목구멍에서 어떤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일야조양(一夜朝阳).” 담태신은 벌레를 손가락으로 집으며 나직이 말했다. “란안이 내 마지막 순간을 기분 좋게 보내게 해주려 한 모양이네.”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마치 서글픈 감정을 담고 있는 듯했지만, 그의 눈동자는 조금의 흔들림도 없었다.
그 순간, 붉은빛을 띠는 작은 벌 한 마리가 석금의 머리 위를 지나갔다.
석금의 눈이 커다랗게 휘둥그레졌고, 그녀의 몸은 힘없이 바닥으로 쓰러졌다.
그녀는 죽을 때까지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도 알지 못했다.
담태신은 무표정한 얼굴로 시체 옆을 지나갔다.
냉궁에서 보낸 14년 동안, 그가 보지 않은 것이 무엇이 있었던가?
그는 아무에게도 말한 적 없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이 그의 눈에는 말라붙은 돌과 마른 풀, 황량한 흙더미와 해골에 불과했다.
한 줌의 썩은 고깃덩어리 따위에, 그는 단 한 번도 감정을 움직인 적이 없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 어떤 육체에도 마음을 빼앗기지는 않을 것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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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 출처 : 구글, 티빙 , YOUK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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