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글은 드라마 장월신명 원작소설 흑월광나온(黑月光拿稳BE剧本)을 제가 번역한 것이라, 의역 있을수 있습니다⭐
장월신명 원작소설 흑월광나온 [ 黑月光拿稳BE剧本 ] 한국어 번역
2장 무릎 꿇는 벌 (罚跪:벌궤)
소년마왕이 왜 벌로 무릎을 꿇고 있는가에 대해,
소소가 받은 기억은 이러했다 —
반달 전, 원래의 몸 주인인 엽석무와 이복 언니 엽빙상은 함께 호수에 빠졌다.
결과적으로 육(六, 여섯째)황자가 이복 언니를 구하러 뛰어들었고, 장원랑(장원급제자를 가르키는 말) 방의지 역시 그녀를 구하려고 물에 뛰어들었다.
심지어 갓 결혼한 지 얼마 안 된 남편 담태신마저도 호수에 뛰어들어 이복 언니 쪽으로 헤엄쳐 갔다.
결국 원래의 몸 주인을 구한 건, 상황이 이상하다고 판단한 그녀의 그림자 수하 한 명뿐이었다.
원래의 몸 주인은 거의 익사할 뻔했고, 돌아온 뒤 분노를 터뜨렸다.
육황자나 장원랑에게는 화를 낼 수 없었기에, 결국 담태신에게 분풀이를 했다.
그녀는 담태신에게 얼어붙은 호숫가에서 무릎을 꿇으라고 명했다.
그녀가 용서해 줄 때까지는 일어날 수 없다고.
하지만 벌이 시행되기도 전에, 그녀는 감기에 걸려 병이 나버렸다.
이에 할머니가 그녀와 담태신을 데리고 사찰에 가서 향을 피우고 복을 빌게 했다.
그러다 가는 길에 변을 당해, 원래의 몸 주인은 산적에게 납치되었던 것이였다.
이제야 돌아왔으니, 당연히 그 벌은 이어졌다.
소소는 가슴을 살짝 문지르며, 소년 마왕이 무릎 꿇는 모습을 보러 나가고 싶었다.
이건 분명 500년 동안 시간과 공간을 여행한 것에 대한 '상'인 거야!
만약 영상 구슬이 있다면, 꼭 영상으로 남겨서 사형사제들에게 보여줬을 텐데.
이제 그들도 수련계에서 어깨 펴고 다닐 수 있겠는걸!
담태신은 얼어붙은 호수 위에 무릎 꿇고 있었다.
이틀 전 그가 돌아왔을 때, 장군부의 집사는 웃으며 말했다. “질자전하(质子殿下:볼모인 담태신을 높여 부르는 말), 삼(三) 아가씨가 하신 말씀 잊지 않으셨지요?”
그는 말없이 고개를 숙이고 시선을 내린 채, 그대로 얼어붙은 호숫가에 가 무릎을 꿇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차가운 기운이 그의 얼굴을 새하얗게 만들었다.
올겨울은 예년보다도 훨씬 추웠다. 몇몇 하녀들이 호숫가를 지나가며 수군댔다. “삼소저((三小姐:셋째 아가씨)께서 또 질자 전하를 벌 주시는 거야?”
“천화사에서 막 돌아왔는데, 삼(三)아가씨가 또 벌을 주시다니, 질자전하 정말 불쌍하다.”
“쉿, 조용히 해, 삼(三)아가씨가 무섭지도 않니?”
삼아가씨와 질자전하가 혼인한 이후, 삼아가씨는 늘 그를 벌줬다.
모두가 알고 있었다.
삼아가씨는 육황자를 마음에 두고 있었고, 질자전하를 지독히도 싫어했다는 것을.
삼아가씨는 엽대장군이 가장 아끼는 딸이었고, 질자인 담태신은 주국 황제가 가장 미워하는 아들이었다.
질자는 대하국에 머문 지 수년이 되었지만, 하인들조차 그를 함부로 대해왔고, 하물며 가장 총애받는 삼아가씨 엽석무에게야 오죽했겠는가.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을 괴롭히는 건, 그저 기분 따라 마음대로 하는 일이 아니던가.
하녀들의 담태신을 바라보는 시선엔 동정이 가득했다.
잘생긴 소년은 평소에 매우 온화하고 예의를 갖추며, 조금도 거만한 기색이 없었다.
그의 질자(볼모)라는 신분 자체가 안타까운데, 지금은 또 이렇게 자주 괴롭힘을 당하고 있었다.
엽대장군이 설령 이 사실을 안다고 해도, 기껏해야 사랑하는 딸을 몇 마디 훈계하고는 그대로 묻어버릴 것이다.
큰 눈이 멀리의 푸른 소나무를 덮고 있었다. 담태신은 기침을 했다.
차가운 기운이 폐 속까지 스며들며 숨 쉬는 것조차 아프게 만들었다.
무릎 아래의 얼음은 뼛속까지 시리게 아팠다.
소년의 검은 머리카락 위에는 이미 서리가 내려앉아 있었다.
담태신은 너무 오래 무릎을 꿇고 있어, 거의 감각을 잃을 지경이었다. 그는 낮게 신음을 흘리며 얼음 위에 손을 짚고, 간신히 몸을 지탱했다.
얼음 위엔 그의 얼굴이 비쳐 보였다.
여리고 해를 끼칠 것 같지 않은 소년의 얼굴이었다.
그는 이틀 전, 엽 삼(三)소저를 산적의 소굴에서 안고 돌아왔을 때를 떠올렸다.
그때 엽가의 노부인의 얼굴은 분노로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이 일은 누구에게도 알려서는 안 된다.
만약 누가 이 일을 입에 올려 소문이 새어나간다면, 엽가는 결코 그를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노부인의 눈빛은 날카롭고 위협에 가득 차 있었다.
이어 노부인은 담태신을 달래듯 바라보며 말했다.
“집안 유모들이 확인해 보니, 석무의 옷과 몸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네게 누가 될 만한 일은 결코 없었을 것이다.”
“할머니께서 너무 염려하십니다. 저는 당연히 석무를 믿습니다.”
노부인은 그를 잠시 바라보더니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엽가의 셋째가 산적에게 납치되었던 일은 그렇게 조용히 덮였고, 노부인은 여전히 그 사건을 조사하고 있었다.
엽가의 호위 병력은 항상 동행해 왔고, 수년 동안 이런 사고는 한 번도 없었다.
산적이 왜 하필이면 엽삼아를 노렸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 일이었다.
그런 어중이떠중이들이 엽석무를 쉽게 납치할 수 있을 리 없었다.
하지만 노부인이 어떻게 조사를 해도 뚜렷한 결과는 나오지 않았고, 결국 이 일은 단순한 사고로 치부되었다.
소소는 호숫가에 도착하자마자 오백 년 후의 화근을 한눈에 알아봤다.
소년은 얼어붙은 호수 위에 무릎 꿇고 있었고, 이제는 거의 버틸 수 없어 보였다.
그의 얼굴은 새하얗고, 입술의 붉은 기운도 사라져 점점 푸르스름하게 변해가고 있었다.
누군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음을 느낀 소년은 고개를 들어 올렸고, 마침 소소와 눈이 마주쳤다.
소녀는 새하얀 부드러운 망토를 걸치고 고개를 갸웃하며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두 사람은 얼어붙은 호수를 사이에 두고 멀리서 서로를 바라보았다.
담태신은 그녀가 갑자기 눈을 휘며 웃는 모습을 보았다.
그는 엽석무가 이렇게 순수하고 맑은 웃음을 짓는 걸 본 적이 없었다.
그녀가 대설로 뒤덮인 겨울 풍경이 마음에 들어 그런 것인지, 아니면 얼음 호수 위에서 처참한 그의 몰골이 만족스러운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소소 옆에 있던 춘도는 차마 보기 힘들어 결국 평생의 용기를 다 짜내어 애원하듯 말했다.
“아가씨, 질자전하께서 벌써 이틀째 무릎을 꿇고 계십니다.
이대로 가면 몸이 상할지도 몰라요. 전하를 이제 그만 일으켜야 하지 않을까요?”
소소는 고개를 저었다. 지금 막 극적인 장면을 즐기고 있는 참이었기 때문이다.
다만 아쉬운 건 영상 구슬이 없다는 점이었다. 그녀는 진지하게 말했다.
“분명히 아직도 단단히 버티고 있어. 보아하니 며칠 밤낮은 더 버틸 수 있겠는걸.”
춘도는 속으로 탄식했다. …삼아가씨, 진심이세요?
소소는 당연히 진심이었다.
그녀는 춘도의 머리를 살며시 쓰다듬었다.
너는 몰라. 너 같은 어린 소녀가 만약 미래에 태어났다면, 그의 이름만 들어도 기절할걸. 동정심 같은 건 생길 리가 없어.
반신불수가 되도록 무릎 꿇어야지.
그래야 이 사악한 존재가 어떻게 마왕으로 변해갈지 지켜볼 수 있지!
그녀는 담태신을 한번 바라보더니 아무 말 없이 몸을 돌려 소매를 휘날리며 자리를 떴다.
소녀의 뒷모습이 처마 아래 긴 복도를 따라 사라지는 것을 본 담태신은 입술을 꾹 다문 채 시선을 거두었다.
소소는 노부인의 뜰로 향했다.
노부인은 막 낮잠에서 깨어난 참이었고, 불교를 믿는 탓에 방 안엔 은은한 단향이 감돌고 있었다.
소소가 들어섰을 때, 방 안에는 연분홍 나이의 푸른 옷을 입은 소녀가 하나 서 있었다.
그 소녀는 원래 노부인의 어깨를 주물러 드리고 있었는데, 소소가 들어오자 바로 손을 멈췄다.
소소는 사람을 알아보지 못했기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지만, 그 소녀가 먼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삼동생”이라고 불렀다.
알고 보니 엽가의 서녀, 둘째 아가씨 엽란음이었다.
소소는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했다.
“둘째 언니.”
엽란음은 소소가 자신에게 대꾸할 줄은 몰랐기에 내심 놀랐고, 당황한 눈빛으로 소소를 한번 바라보더니 노부인에게 가볍게 인사했다.
“할머니, 내일 다시 와서 함께 불공 드릴게요.”
노부인은 그녀의 손을 가볍게 두드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소소는 이제야 상황을 파악했다. 원래의 주인은 엽가에서 작은 폭군 같은 존재였던 것이다.
자신이 들어오자 엽란음은 곧장 자리를 비켜야 했고, 자신이 그녀를 ‘ 둘째언니’라고 부른 것만으로도 그녀는 어쩔 줄 몰라 했으며, 불안해했다.
그렇다면 원래의 주인은 평소에 대체 얼마나 무서웠던 걸까?
엽란음이 나가자, 노부인의 딱딱하던 얼굴에도 한결 부드러운 기색이 감돌았다.
“석무야, 이리 와서 할미가 좀 보자. 몸은 좀 나아졌니?”
소소는 다가가며 말했다.
“할머니께서 걱정해주신 덕분에, 석무는 이제 괜찮아요. 요 며칠, 걱정 끼쳐드려서 죄송해요.”
노부인은 다정하게 그녀의 이마를 톡톡 두드리며 말했다.
“할미도 나이가 많아 이제 살아갈 날이 얼마 안 남았는데, 너란 애 좀 걱정 안 하게 해다오.”
소소는 노부인의 어깨를 주물러 드리며 말했다.
“할머니는 아직 정정하시잖아요. 모르는 사람이 보면 제 어머님인 줄 알겠다니까요. 평생 석무를 지켜주시셔야죠.”
“입만 살아가지고는, 뭔 헛소리람.”
노부인은 일부러 꾸짖는 척했지만, 눈가에 번진 웃음은 감출 수 없었다.
엽장군의 정실부인은 원래 몸 주인을 낳고 얼마 되지 않아 세상을 떴다.
엽장군은 그 뒤로 재혼하지 않았고, 노부인이 손수 원래 몸 주인을 곁에 두고 키웠다.
자신이 직접 길러온 아이, 입에 물고 다닐 정도로 아끼니 편애가 심한 것도 당연했다.
원래 몸 주인이 이렇게 버릇없게 된 데엔 노부인의 사랑도 한몫했다.
원래 주인도 머리가 빨라 평소엔 독하긴 해도 어른들 앞에선 아주 능청맞게 잘 굴었다.
대하국은 효도를 중시했고, 엽장군은 그중에서도 효심 깊기로 이름난 인물이었다.
그런 엽장군의 어머니인 노부인이 엽석무를 눈동자처럼 아끼니, 엽장군도 당연히 이 외동딸을 극진히 아꼈다.
“절에서 있었던 일은, 내가 하인들 입을 다 막아뒀단다.
너도 이 일은 입 밖에 내지 마라. 여자아이에게 정절은 아주 중요한 것이야.”
소소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할머니.”
엽가에서 노부인은 정말로 원래 몸의 주인을 아꼈다.
원래 몸의 주인의 바람이 떠올라, 소소는 앞으로 노부인에게 잘하려고 마음먹었다.
노부인은 다시 말했다.
“너도 철 좀 들어야지. 질자에게도 마음을 조금은 풀어줘라.
아내가 그런 일을 당했으니, 그 애도 마음이 편치 않을 거야.”
소소는 얼음 호수 위에서 벌 받고 있는 소년을 떠올렸다.
자기가 정말 그 소년 마왕과 부부가 될 것도 아닌데, 적의라도 없어야 위로 같은 걸 해주지.
하지만 노부인을 앞에 두고 그런 말은 할 수 없었기에,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알겠어요.”
노부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할머니, 은교는 찾으셨어요?”
노부인의 눈빛이 잠시 흔들리더니, 웃으며 말했다.
“그 계집아이는 찾았단다. 다친 데는 없었고, 내가 장원으로 보내두었지.
은교도 벌써 혼인할 나이가 됐는데, 이번에 주인을 지키겠다고 용감하게 나섰으니, 더 이상은 이 안에서 지체시킬 수 없지.”
노부인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더러운 일들은 석무가 평생 몰랐으면 했다.
소소는 노부인의 등 뒤에 있었기에 그 표정을 볼 수 없었지만, 말을 듣고는 안심한 듯 숨을 내쉬었다.
“그럼 다행이에요.”
“지난번 궁중 연회 때 일 말이다, 내가 아무 말 안 했지만…
네 큰언니는 이미 출가한 몸인데, 넌 왜 괜히 그애를 곤란하게 만들었니?
같이 물에 빠져서 병까지 얻고…
대체 왜 그런 짓을 한 거야.”
“네가 예전엔 육황자를 마음에 두고 있었다는 거, 할미도 다 안다.
하지만 네 큰언니는 지금 그 육황자의 측실이야.
그리고 넌 담태신에게 이미 시집간 몸이고.
그러니 할미 말 잘 듣고, 앞으로는 육황자와는 멀리 지내거라!”
소소는 그 말에 그만 입 안으로 침 넘어가다 목이 막힐 뻔했다.
그래, 원래 몸 주인인 엽석무의 문제는 성격뿐만이 아니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그녀가 자신의 언니가 좋아하는 남자, 육황자를 좋아했다는 것이다!
심지어 결혼까지 했으면서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서출(첩의 딸) 언니를 괴롭히고 모함하는 일이라면 하나도 빠짐없이 저질렀다.
그리고 담태신은, 그 서출 언니를 좋아했다.
이 얼마나 복잡한 관계인가. 부부 사이인데도 서로 다른 부부를 바라보고 있으니 말이다.
노부인은 소소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다고 생각하며 안타까운 듯 그녀의 손등을 탁 하고 쳤다.
“할머니 말에 대답하지 않겠느냐.”
“네, 석무는 알겠어요. 앞으로는 꼭 육황자와 거리를 둘게요.”
노부인이 말하지 않았더라도, 소소는 서출 언니와 육황자를 두고 다툴 생각이 없었다.
소소가 너무 시원스레 대답하자, 노부인은 오히려 의심이 들었다.
석무는 육황자를 간이 다 녹아내릴 정도로 좋아했는데, 이렇게 쉽게 포기한다고?
“이 계집애, 혹시 할미를 속이려는 건 아니지?”
소소는 뺨가에 옅은 보조개를 드러내며 웃었다.
“당연히 아니죠.”
노부인은 말을 이었다.
“그럼 할미한테 증명해 보이거라. 더는 질자를 벌주지 말아야 한다.
들으니 네가 얼음호수 위에 무릎 꿇게 했다더라.
이렇게 추운 날씨에, 그런 짓이 여자가 할 짓이냐?
이 소문이라도 퍼지면 네 명예에 해가 될 게야.”
“그 애 신분이 좋지 않다 해도, 어쨌든 네 남편이야.
어떻게 그렇게 죽도록 괴롭힐 수 있겠니?
이제 마음 좀 다잡고, 제대로 살아가는 게 바른 일이야.”
소소는 노부인이 단단히 눈을 맞추며 고개를 끄덕이길 바라는 눈빛을 보자, 결국 한숨을 내쉬었다.
“네.”
엽란음은 노부인의 방에서 나오자, 그녀의 시녀, 교아가 재빨리 달려왔다.
“둘쨰 아씨, 오늘은 어쩐 일로 이렇게 일찍 나오셨어요?”
“삼아가씨가 왔거든.”
교아는 짐작했다는 듯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노부인도 참 너무 편애하세요.”
엽란음이 말리지 않자, 교아는 계속해서 말했다.
“삼아가씨가 육황자 앞에서 큰아가씨를 밀어 물에 빠뜨렸는데도, 노부인께서 그 일을 덮어주셨잖아요.”
“예전엔 다들 삼아가씨가 육황자의 정실이 될 줄 알았는데, 결국 육황자는 큰아가씨를 측실로 들였죠.”
엽란음의 눈빛이 조금 흔들렸다.
그래, 누구도 예상 못 했지. 육황자가 혼인을 청할 때, 상대가 엽가의 서출 장녀 엽빙상이 될 줄은.
엽빙상은 어디까지나 서출이었기에 황자의 정실이 될 수 없었고, 측실로만 들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그때 멀리서 보았던 육황자의 눈빛엔, 오직 첫째 언니에 대한 사랑만이 가득했다.
그 생각에 엽란음은 손수건을 꽉 움켜쥐었다.
같은 서출인데, 엽빙상은 황자에게 그토록 사랑받고,
자신은 노부인께 잘 보이기 위해 아첨이나 하며, 언젠가 좋은 혼처나 내려주시길 바라고 있어야 했다.
가슴 속이 꽉 막혀오다가, 빙판 위에 무릎 꿇고 있는 담태신을 보자, 엽란음의 표정이 그제야 조금 누그러졌다.
교아의 얼굴에도 남의 불행을 즐기는 듯한 웃음이 스쳤다.
삼아가씨가 장군부의 유일한 적녀면 뭐 하겠는가.
결국 저렇게 비천한 질자와 혼인해 버렸는데, 앞으로 무슨 귀함과 총애가 있겠나?
다들 알고 있었다.
담태신은 여섯 살 때 대하국에 인질로 끌려와 줄곧 궁에서 갇혀 지냈다는 것을.
듣자 하니 환관의 발도 씻어줬다 하고, 개밥도 먹었다고 한다.
그런 비천한 자가, 아마 글자 하나도 제대로 모를 것이다.
문무를 겸비한 육황자와는 비교도 안 되는 사람이다.
그와 혼인한 첫 달 동안, 삼아가씨는 밤마다 울고, 성질을 부리고, 욕설까지 퍼부었다.
그나마 최근 두 달 사이 조금 나아졌을 뿐, 여전히 담태신을 사람 대접도 하지 않았다.
엽란음은 손수건으로 입을 가리며, 번지는 웃음을 숨겼다.
대하국은 무도(武道)를 중시하는 나라다.
듣기로는 그 담태신이라는 자, 어릴 때 기골이 망가져 지금은 병아리 하나도 제대로 못 잡을 정도라고 한다.
허약하기 그지없는 그런 소년이, 예전 같았으면 잘난 체하던 삼아가씨가 눈길조차 주지 않았을 것이다.
노부인도 결국은 세상을 뜰 날이 올 텐데, 궁전 하나 없는 질자가 그때 가서 엽석무에게 무엇을 줄 수 있을까?
엽석무는 결국 평생 누군가에게 짓밟히며 살아야 할 운명인 셈이다.
교아가 말했다.
“듣자 하니 질자가 얼음 위에 무릎 꿇은 지 벌써 이틀째라던데요.
하도 얼굴빛이 안 좋아서 곧 쓰러질 것 같던데요.
둘째 아씨, 그에게 외투라도 하나 줘야 할까요?”
평소 엽란음은 하인들에게 시혜 베푸는 걸 좋아했고, 덕분에 집안에서 인망이 높았다.
그런 부드럽고 착한 평판은, 삼아가씨 엽석무보다 훨씬 많은 이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었다.
엽란음은 잠시 마음이 흔들렸다. 그녀는 담태신을 바라보았다.
그의 신분은 참 볼품없지만, 그 얼굴만큼은 확실히 잘생겼다.
여자인 자신보다도 더 섬세하고 곱게 생겼으니 말이다.
엽란음은 고개를 끄덕이며, 교아가 외투를 가져다주는 걸 묵인했다.
그리고 자신은 정자에 서서, 질자를 향해 부드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담태신 역시 정자 위에 선 부인의 둘째 따님을 보았다.
교아는 눈처럼 새하얀 외투를 들고, 조심스럽게 얼음 위를 디디며 그를 향해 다가갔다.
소소는 조모를 뵙고 돌아오다가, 바로 이 광경을 보게 되었다.
자신의 둘째 언니가 소년 마왕에게 호의를 보이고 있는 모습이었다.
소소는 천천히 걸어갔다.
“둘째 언니,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엽란음은 깜짝 놀랐다. 설마 소소가 이렇게 빨리 나올 줄은 몰랐던 것이다. 결국 현장에서 딱 걸리고 말았다.
그녀는 황급히 말했다.
“삼아씨, 오해하지 마. 나는 그냥 날씨가 너무 춥고, 또 눈도 내리기 시작해서...
질자가 이렇게 얼음 위에 무릎 꿇고 있다가 잘못되기라도 하면 안 되잖니.
그래서 교아에게 외투를 가져다주라 한 거야.”
소소는 얼음 위에 무릎 꿇은 담태신을 향해 물었다.
“괜찮겠어? 둘째 언니가 외투 준다는데, 받을래?”
소소는 정의의 빛이라 불리는 존재로서, 훗날 삼계를 혼란에 빠뜨릴 이 악당을 진심으로 싫어했다.
담태신은 소소를 한 번 바라보고, 엽란음에게 말했다.
“둘쨰 아가씨의 호의는 감사하오. 하지만 나는 춥지 않소.”
그 말은, 곧 정중한 거절이었다.
엽란음은 마음속으로 약간의 민망함을 느꼈다.
“그렇다면, 삼아가씨와 질자를 더 이상 방해하지 않을게요.”
그녀는 더 머물 수 없어, 교아를 데리고 자리를 떠났다.
소소는 부드러운 외투를 몸에 여며 입었다.
그리고는 발치에 무릎 꿇고 있는 마왕을 내려다보았다.
그를 죽이는 것은 아마도 수천 년을 산 고수부터 갓 수련을 시작한 아이들까지, 온 수련계의 공통된 소망일 것이다.
그것은 소소가 어릴 적부터 세운 위대한 서원이기도 했다.
지금의 그는 한 방이면 쓰러질 듯, 무력해 보였다.
소년 시절의 마왕은 마치 아기처럼 연약했다.
온몸에서 "나 지금 죽이기 딱 좋아요"라고 말하는 듯했다.
정도의 소녀는 속이 들끓었다.
하지만 소소는 애써 그 충동을 억눌렀다.
수련자에게는 영근이 있는 법이고, 태생이 마물인 자는 사골이라는 사악한 뼈를 지니고 있다.
장로들의 말로는, 마왕의 사골을 제거하지 않으면, 그를 죽인다 해도 그는 세상의 원한을 흡수해 다시 부활한다고 했다.
즉, 그를 죽이는 것이 오히려 그를 더 강하게 만들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니 먼저 그 사골을 제거할 방법을 찾아야 했다.
담태신은 어렴풋이 살기를 느꼈다.
그는 눈을 들어 바라봤지만, 소녀는 이미 시선을 돌린 뒤였다.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그녀의 반쯤 드러난 얼굴, 그리고 눈처럼 하얀 귀.
입술은 약간 삐죽 나와 있었고, 뭔가 못마땅한 듯한 감정이 느껴졌다. 분홍빛의 작고 귀여운 입술이었다.
그 모습은 그녀의 독한 성정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담태신은 추위에 감각을 잃고, 그대로 얼음 위에 쓰러졌다.
고귀한 소녀는 걸음을 멈췄지만, 그를 쳐다보지도 않고 곁을 지나갔다.
그는 몸을 움츠린 채 얼음 바닥에 누워, 그녀의 분홍빛 꽃무늬가 수놓인 하얀 신발을 바라보았다.
그 위에는 생기 넘치는 복숭아꽃이 피어 있었다.
엽대장군은 그날 밤 집에 돌아오지 않았고, 노부인은 연로해 기력이 없었기에, 모두가 각자의 뜰에서 저녁 식사를 하기로 했다.
소소는 목욕을 마치고, 춘도와 함께 잠자리에 들 준비를 했다.
춘도는 그녀의 머리를 풀어주며, 등불 아래 그녀의 얌전한 얼굴을 보고 감탄을 금치 못했다.
“삼아가씨의 머리카락은 정말 부드럽고 윤기 나네요.”
칭찬하고는 깜짝 놀라며 혹시 무례했다 생각했지만, 소소는 눈을 가늘게 뜨며 웃었다.
“춘도의 머리카락도 예쁘잖아.”
바로 그때, 희희라는 작은 하녀가 뛰어들어와 소소에게 가볍게 예를 올리며 모기 소리로 말했다.
“노부인께서 질자 전하를 보내셨습니다.”
소소가 고개를 들자, 과연 담태신이 방으로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소년의 머리엔 서리가 내려앉아 있었고, 방 안의 따뜻한 공기에 닿자마자 물방울로 변했다.
그는 바깥의 눈바람을 몸에 지닌 채, 입술을 다물고 조심스럽게 소소를 바라보았다.
아직 유시(오후 5시부터 7시까지의 시각)도 되지 않았지만, 추운 날씨 탓에 이미 밖은 칠흑처럼 어두워졌다.
그가 방에 들어서자, 공기마저 고요해진 듯했다.
춘도와 희희는 황급히 말했다.
“삼아가씨, 저희는 물러가겠습니다.”
둘은 문을 닫고 나갔다.
담태신은 목소리를 낮추고 물었다.
“삼아가씨, 이제 화가 좀 풀리셨습니까?”
소소는 망설임 없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직.”
그는 고개를 숙였다.
까마귀 깃털처럼 검고 긴 속눈썹이 그의 눈을 덮었다.
실내의 온기도 그를 크게 편하게 해주지 못했고, 오히려 얼어붙은 손발이 저리고 가려워 붉게 부어올랐다.
소소는 한 번 흘끗 바라봤다.
속으로는 코웃음을 쳤다. 마왕이 불쌍하긴 뭐가 불쌍해.
그녀는 날개가 부러진 어린 매도 치료해본 적 있고, 병든 아이도, 백발이 성성한 노인도 돌본 적 있다.
하지만 선계의 첫 번째 규율, 수련하는 소녀는 절대로 사악한 존재에게 동정심을 가져선 안 된다.
아무리 그가 약해 보이더라도.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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