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글은 드라마 장월신명 원작소설 흑월광나온(黑月光拿稳BE剧本)을 제가 번역한 것이라, 의역 있을수 있습니다⭐
장월신명 원작소설 흑월광나온 [黑月光拿稳BE剧本] 한국어 번역
76장. 백발
마치 한순간이 지나간 듯했고, 또 마치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듯했다.
담태신은 마침내 몸을 움직일 수 있었다.
그는 천천히 성벽 아래에 누워 있는 차가운 시신을 끌어안았다.
필사적으로 그녀를 안은 채, 그의 왼쪽 눈에서 흘러내린 핏빛 눈물이 그녀의 머리카락 속으로 스며들었다.
“난 믿지 않아.” 그는 낮게 중얼거렸다.
마치 아이처럼 울면서도 웃었다.
“너의 잠룡위(潜龙卫)는 왜 널 구하지 않았지?
너… 아주 강하잖아.
날 죽일 수도 있는 네가, 왜… 왜 이런 선택을 한 거야.
이건 장난이지? 그렇지? 분명 장난일 거야.”
“음양(凫茈부차)팔찌… 그래, 네 혼백만 남아 있다면, 넌 죽지 않아.”
그는 마지막 한 가닥 희망이라도 붙잡으려는 듯, 광기에 휩싸여 그 팔찌를 찾아 헤맸다.
황금빛 음양 팔찌는 소녀의 곁에서 산산 조각이 나, 차가운 겨울 눈 속에 묻혀 있었다.
수천의 장병들은 눈앞의 광경을 지켜보았다.
그들의 황제가 미쳐버린 사람처럼, 눈 속에서 산산이 부서진 조각들을 찾고 있었다.
팔찌의 파편이 그의 손을 찢어놓아, 피가 뚝뚝 흘러내렸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단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꼭 움켜쥐었다.
“봐, 내가 다시 찾았어.”
담태신의 얼굴은 왼쪽 눈에서 흘러나온 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의 눈동자는 간절한 희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팔찌의 조각을 맞추려 애썼다.
그러나 이미 부서진 팔찌는 다시 온전해질 수 없었다.
소녀의 시신은 그의 다리에 기대어 있었고, 아무런 기척도 없었다. 그녀의 손이 그의 손에서 미끄러져 내려갔다.
그는 아무런 표정도 없이 다시 그녀의 손을 붙잡았다.
그리고 그 차디찬 손바닥 위로 후- 하고 숨을 불어넣었다.
“밖은 너무 춥다. 우리, 집에 가자.”
그는 처참하게 부서진 그녀의 몸을 품에 안았다.
그가 엽저풍 곁을 지나칠 때, 엽저풍은 목이 메어 말했다.
“폐하…”
그러나 검은 옷의 황제는 아무런 반응도 없이, 단지 그녀를 안은 채 계속 걸었다.
거센 눈보라가 그의 어깨 위에 소복이 쌓였다.
입백목응 역시 참지 못하고 외쳤다.
“폐하!”
그러나 그는 계속 걸었다.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의 뒤로는 거대한 군대가 끝없이 이어졌고, 그의 앞에는 끝없는 눈밭이 펼쳐져 있었다.
마치 그가 소소를 처음 만났던 해처럼...
그때 소녀는 놀란 얼굴로 그의 품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런데 이제 그녀의 몸에는 더 이상 온기가 남아 있지 않았다.
칠백여 일과 밤을 지나며, 흐릿했던 기억들이 점점 또렷해졌다.—
그녀는 인파를 뚫고, 적염봉을 죽이며 그를 찾아왔고,
눈 속에 쓰러진 그를 일으켜 세웠으며, 그를 위해 조왕과 맞섰다.
그녀는 한 마을의 호숫가에서 그를 주워, 그의 왼쪽 눈 상처를 조심스럽게 씻어 주었다.
복숭아꽃 누에고치 속에서, 그녀는 그를 감싸 안았고,
흩날리는 꽃잎 사이에서, 끝없는 악몽 속에서,
그의 입술 위로 전해진 따스함도 그녀의 것이었다.
그들은 함께 하국 황궁을 보았고, 조용한 작은 마을의 달빛 아래를 걸었고,
끝없는 강과 세상의 온갖 귀신과 요괴를 마주했다.
한 사람만을 사랑한 여우 요괴,
만 년을 살아온 교룡, 비극적인 운명의 조개 공주,
함께 걸어온 한 생의 반야부생(般若浮生)…
담태신은 떠올렸다.
과거 그의 가슴속 깊은 곳에 묻혀 있던, 흔들림 없던 감정들이 한순간에 거대한 파도가 되어 그를 덮쳤다.
그는 기억했다.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은 망상과 기쁨에 사로잡혀, 한 땀 한 땀 손수 바느질하며 희망을 가리개 속에 꿰매 넣었던가를.
그녀를 볼 때마다 가슴이 벅차올랐고,
그녀를 보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으며,
자꾸만 그녀를 따라가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
식혼번(噬魂幡)은 부서졌고, 그 안에 있던 노도사는 죽었으며,
그녀를 가둬두던 팔찌마저 산산 조각나 부서졌다.
뒤늦게 움튼 정이 마음속 깊이 뿌리내리고,
마치 절벽을 타고 오르는 등나무처럼 거칠게 뻗어나가 그를 옭아맸다.
그는 심장이 아프고, 온몸이 아프고,
심지어 숨을 쉬는 것조차 고통스러웠다.
그는 어떻게 해야 할까, 도대체 누가 그녀를 구해 줄 수 있을까……
입백목응이 그를 따라잡았을 때, 마침내 그가 무너져 내리듯 눈 속에 주저앉는 모습을 보았다.
먹빛 같은 검은 그의 머리카락이 한 올 한 올 하얗게 변해갔고,
그는 차갑게 식어가는 소녀를 끌어안은 채, 어쩔 줄 몰라하며 울음을 터뜨렸다.
살아오는 동안, 담태신이 이렇게 통곡하는 모습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는 간절히 빌고 싶었지만 누구에게 빌어야 하는지조차 알지 못했다.
그는 미워하고 싶었지만 누구를 미워해야 할지도 알 수 없었다.
눈물이 흘러내린 얼굴의 핏자국을 씻어내렸고, 그는 끝내 버티지 못하고 선혈을 한 움큼 토해냈다.
경화(景和) 원년의 겨울, 임외성에게는 재앙이었다.
팔황자가 죽은 이튿날, 담태신은 직접 그의 시신을 조각내어 개들에게 던져 주었다.
그는 군대를 이끌고 임외성을 피로 물들였다.
머리카락이 온통 은빛으로 변한 황제는 피로 얼룩진 얼굴로 광기 어린 웃음을 터뜨렸다.
그의 눈은 완전히 붉게 물들었고, 마지막엔 두꺼운 눈 위에 쓰러져, 가면으로 얼굴을 가린 채 흐릿한 회색빛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담태신은 자신이 몇 명을 죽였는지조차 기억나지 않았다.
그녀는 세상을 사랑했는데, 왜 이번만은 그의 가면을 벗기고 그를 막지 않았을까?
그녀는 그가 죽길 바랐던 것 아닌가?
그런데 그는 여전히 살아 있는데, 어째서 그녀는…… 어떻게 그를 남겨둔 채, 이렇게 미련도 없이 떠나버릴 수 있었단 말인가.
인간의 피는 따뜻했지만, 담태신은 온 세상이 차갑기만 했다.
엽저풍은 아무 말 없이 담태신을 데리고 돌아왔다.
그 또한 생각지 못했다.
셋째 여동생의 성격이 이렇게까지 결연할 줄이야.
그들 누구도 그녀를 구할 시간이 없었고, 그 누구도 그녀를 구할 방법이 없었다.
소소의 손목에 있던 팔찌는 부서졌고, 담태신의 손에 있던 그것 역시 함께 깨져버렸다.
담태신은 결국 자신도 곧 죽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는 죽지 않았다.
한때 나약하고 초라했던 이 몸은 이제 주먹을 움켜쥐는 것만으로도 세상에서 가장 순수하고 단단한 힘이 깃든 듯했다.
맑고 강한 힘. 그가 한때 갈망했던 모든 것,
그녀는 전부 그에게 주었다.
그러나 그의 마음은 텅 비어 있었고, 조금도 기쁘지 않았다.
심장 속에 박힌 여섯 개의 못이 그를 견딜 수 없을 정도의 고통으로 몰아넣었고, 그녀가 준 신수로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게 만들었다.
주궁(周宫)의 모든 이들은 전전긍긍하며, 감히 황제의 침궁 근처에도 다가가지 못했다.
궁인들은 마치 깨어날 수 없는 악몽에 빠진 듯했다.
위희는 몸을 떨며 안을 힐끗 들여다보았다.
커다랗고 썰렁한 궁 안, 약수(弱水)로 만든 무기는 담태신 손에 의해 녹아 그녀의 침상으로 깔려 있었다.
소녀는 그 위에 누워 있었고, 장막에 달린 유리 토끼의 손에는 칠흑빛의 명라주(冥罗珠)가 박혀 있었다.
담태신이 그녀의 시신을 안고 돌아왔을 때, 시신은 이미 처참한 모습이었다.
피비린내 나는 학살을 마치고 돌아온 작은 폭군은 한참을 울었고, 눈물은 옷깃을 적셨다.
충분히 울고 난 후 그는 미소를 띠며 그녀의 상처를 하나하나 꿰매었다.
그는 매일 시신과 함께했다.
때로는 아침에 갓 핀 꽃을 그녀의 머리에 꽂아 주었고, 때로는 그녀의 눈썹을 그리고 연지를 발라 주었다.
그는 그녀에게 자신이 어린 시절 주국(周国) 황궁과 하궁(夏宫)에서 보낸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 이야기들은 오래되고, 무겁고, 어두웠다.
마치 사람을 끝없는 심연으로 끌어당기는 마수 같았지만, 정작 담태신은 그것이 얼마나 기이한지조차 알지 못했다.
그는 세상 모든 사람들의 어린 시절이 다 그런 줄로만 알았다.
아마 소늠 같은 자들만이 운이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명라주는 시신을 보존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차디찬 시신은 대전 안에 오래 둘 수 없었다.
당년(当年), 편연(翩然)이 산속에서 고대의 강시를 기르기 위해 천 년의 수행을 소모하여 진법을 펼치고 천지 영기를 흡수해야만,
비로소 명라주의 효과를 제대로 발휘할 수 있었다.
지금 와서 또 다른 아홉 꼬리 여우를 어디에서 찾을 수 있단 말인가?
겨울이 가기도 전에, 소녀의 몸에서는 희미한 부패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범인의 기운은 탁하고 혼탁했다.
담태신이 가까이 다가갈수록, 그 탁한 기운은 더욱 짙어졌다.
침상 위의 그녀는아무것도 느끼지 못했고, 그가 느낄 수 있는 유일하게 생생한 것은 그의 왼쪽 눈 속에 있었다.
담태신은 더 이상 그녀를 감히 만지지 못했다.
그는 겁에 질린 채 뒷걸음질치며, 멍하니 자신의 왼쪽 눈을 감싸 안고 어쩔 줄 몰라 했다. 손발이 떨리며 속삭였다.
“미안해, 미안해. 나도 몰랐어…… 몰랐어…… 안 만질게. 안 만질 거야……”
그녀와 관련된 모든 것이 천천히 사라졌다.
그녀는 그에게 아무것도 남기고 싶지 않았다.
소소는 주국 황궁을 떠나 임외성으로 가기 전, 이미 한 줌 불길로 과거의 옛 팔찌와 옷가지를 모조리 태워버렸다.
노도사는 사라졌고, 이제 그는 그녀의 시신조차 붙잡아 둘 수 없었다.
위희는 작은 폭군이 휘청거리며 궁전을 나와, 대전 앞에 주저앉아 한참을 앉아 있는것을 보았다.
그의 등 뒤로 문이 닫히고, 그는 마치 길을 잃은 아이처럼 가련하게 흐느끼며 말했다.
“위희, 나…… 어떻게 해야 하지?”
위희는 손에 든 부진(拂尘)을 제대로 쥘 수 없었다. 공포에 질려 무릎을 꿇으며 외쳤다.
“폐하, 용서해 주십시오! 폐하, 용서해 주십시오!”
위희는 기억하고 있었다.
폐하께서 마지막으로 한 태의(太医)에게 같은 질문을 했을 때, 다음 순간 미소를 띠고 그 태의를 죽여버렸다는 것을.
작은 폭군은 이미 완전히 미쳐 있었다.
담태신은 위희를 힐끗 쳐다보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전각 앞에는 눈이 가장 두껍게 쌓여 있었다.
그가 그 누구도 그와 소소의 시간을 방해하지 못하도록 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한동안 울다가,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기쁜 듯 말했다.
“오늘은 석무(夕雾)를 기쁘게 해 줄 시간이야.”
위희는 온몸을 떨며, 점점 멀어지는 담태신을 바라보았다.
마치 온 힘이 빠져나간 듯, 다리가 풀렸다.
‘석무를 기쁘게 해 줄 시간’
처음에 위희는 그게 무슨 뜻인지 몰랐다.
그러나 점차 이상한 낌새를 느꼈다.
궁 안에서 유일한 황후가 너무 오랫동안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는 것을.
작은 폭군과 관련된 일에 대해, 궁 안의 누구도 감히 궁금해할 수 없었다.
냉궁(冷宫)의 그녀가 죽고, 임외성이 도륙당한 후, 한때 가장 중용받던 양기 대인조차도 요즘은 감히 궁에 발도 들이지 못했다.
모든 것은 변했고, 주국(周国) 황궁은 마치 차디찬 지옥이 되어버렸다.
담태신의 뒤를 따라가며, 입백목응은 복잡한 심정이었다.
담태신은 입백묵응을 해치지 않았다.
어쩌면 그녀가 가장 오랫동안 소소를 보살폈고, 그녀의 삶을 가장 많이 기억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이 그에게 남은 마지막 희망이었다.
어둡고 눅눅한 지하 감옥, 거친 풀더미 위에 한 여인이 숨이 끊어질 듯 누워 있었다.
입백묵응은 복잡한 심경으로 엽빙상을 바라보았다.
한때 하국(夏国)에서 절세미인이라 칭송받던 그녀는 이제 썩어가는 살덩이에 불과했다.
발소리를 들은 그녀는 고통스럽게 비명을 질렀다.
“아—— 제발, 죽여 줘. 날 죽여 줘……”
현의(玄衣.검은 옷)를 입은 청년이 그녀 곁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사방에서 물방울이 똑똑 떨어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수많은 작은 뱀들이 옆에 놓인 대나무 우리에서 기어나와 차갑고 섬뜩한 감촉으로 엽빙상의 몸을 감쌌다.
그녀를 물면서 기어오르는 뱀들, 엽빙상은 미쳐버릴 듯 비명을 질러댔다.
이제 그녀에게는 예전의 부드러운 모습은 조금도 남아 있지 않았다.
담태신은 그런 그녀와 함께 뱀굴 속에 앉아 있었다.
어린 뱀들은 배가 고파 영식(灵识)이 없었고, 기르는 주인도 구분하지 못한 채 담태신까지 물었다.
그는 아무런 표정도 없이 개의치 않았다.
가끔 성가실 때면 그저 뱀들을 잡아 뜯어냈을 뿐이었다.
엽빙상은 미쳐버릴 것 같았다.
그녀는 뱀이 두려웠다!
정말 무서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차라리 죽고 싶었다. 이런 지옥 같은 곳에 있는 것보다 백 번은 나았다.
하지만 담태신은 절대로 그녀를 죽게 내버려 두지 않았다.
심지어 뱀들이 하루에 몇 번 물어야 하는지까지 철저히 계산해 두었다.
그녀의 목숨을 앗아가진 않았지만,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도 허락하지 않았다.
그는 마치 지옥에서 온 악귀 같았다.
그의 목소리가 부드럽게 감옥에 울려 퍼졌다.
“무서우냐? 스스로 가장 두려워하는 것과 마주하면, 이렇게 되는구나.”
그는 마치 경치를 감상하듯 낮은 웃음을 흘렸다.
“과인의 황후도 아주 많이 두려웠지. 너를 보니 이제야 알겠다.
요즘 그녀는 기분이 좋지 않아서, 과인을 가까이하지도 않고, 보러 가는 것도 허락하지 않아.
과인은 그녀가 조금이라도 기뻐했으면 좋겠어. 너무 오랫동안 웃지 않았거든.
아마 내일쯤이면, 그녀도 과인을 만나 주지 않을까?”
엽빙상은 바닥을 구르며 더는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이 미친놈! 그녀는 이미 죽었어! 다 내 탓만은 아니야!
너도 책임이 있어! 모든 결정은 네가 한 거잖아! 왜 나한테만 죄를 덮어씌워?”
그녀는 그가 반박하거나, 분노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뜻밖에도 담태신은 그저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맞아, 나도 죽어 마땅하지.”
엽빙상은 미친 듯이 웃어댔다.
“하하하! 넌 그녀를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결국 네 손으로 죽였어.
담태신, 나도 죽겠지만, 넌 편할 날 없을 거야.
사랑하는 사람을 네 손으로 죽이는 기분이 어때? 넌 괴물이야. 괴물!
아악…… 비켜! 물지 마!”
어둠이 짙게 내려앉을 무렵, 담태신은 지하 감옥에서 걸어 나왔다.
입백묵응은 오랫동안 망설였지만 결국 심문 결과를 담태신에게 전하기로 했다.
“엽빙상이 두려움에 떨며 결국 자백했습니다.
여덟 살 때 외가별장에서 놀다가 발을 헛디뎌 깊은 산골짜기로 떨어졌다고 합니다.”
“산골짜기에는 백화가 만발했고, 막 아이를 낳고 죽어가던 한 여인이 있었대요.
그 여인은 엽빙상이 어린 여자아이인 것을 보고 며칠간 보호해 주었고,
그녀가 길을 잃고 위험에 처할까 봐 날아다니는 옥피리를 하나 주며 골짜기에서 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고 합니다.”
그때 엽빙상은 커다래진 옥피리를 타고 골짜기를 떠나던 중, 피투성이가 된 요괴와 마주쳤다.
요괴는 얼마 남지 않은 목숨을 붙잡고 간신히 버티고 있었고,
엽빙상이 옥피리를 타고 있는 것을 보자 한 개의 비단 주머니를 골짜기의 주인에게 전해 달라고 부탁했다.
어린 소녀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약속했다.
그렇게 약속을 지키려 골짜기로 돌아갔을 때, 엽빙상은 호기심이 일었다.
주머니 속에는 대체 무엇이 들어 있는 걸까?
겨울인데도 꽃이 피어 있는 이 신비로운 골짜기,
하늘을 나는 피리, 절세미인의 존재, 심지어 요괴까지.—
그렇다면 그 주머니 속에는 대체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을까?
그녀는 조심스레 그것을 열었다.
그 안에는 눈처럼 새하얀, 얼음 실처럼 아름다운 물건이 들어 있었다.
그녀가 손을 뻗어 그것을 살짝 만졌을 때,
형언할 수 없는 어떤 손길이 그녀의 마음속 어둡고 둔탁한 안개를 걷어낸 듯, 단번에 정신이 맑아지며 비상한 총명이 생겨났다.
어린 소녀는 기쁜 마음으로 그 얼음 실을 집어 들고 주머니 속 다른 물건을 바라보았다.
찬란한 빛을 내뿜고 있는—
호심린(護心鱗)이었다..
그것은 고대 대요(大妖)의 몸에서 떨어진 가장 단단한 비늘로, 그녀는 숨을 죽인 채 시선을 빼앗겼다.
그 순간, 비늘이 그녀의 손바닥을 베었다.
“앗!”
그녀는 본능적으로 손을 움켜쥐었고, 날뛰던 비늘은 그녀가 타고 있던 옥피리의 기운을 감지하고 주저하며 조용해졌다.
엽빙상은 그 비늘 속에서 자신의 미래를 보았다.
그녀는 입술을 깨물며 새하얀 얼음 실과 호심린을 꽉 움켜쥐었다.
그리고 뒤편의 골짜기를 돌아보았다.
그곳에 있던 아름다운 여인은, 어쩌면…… 이미 죽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 물건을가져다 준다 해도, 그것을 쓸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오히려 자신의 미래가 너무나도 초라하니, 이 물건들이 자신을 구원해 줄지도 모른다.
그녀는 이를 악물고 도망치듯 골짜기를 떠났다.
그 겨울날은 엽빙상의 비밀이 되었고, 나중에 우연히 호심린이 그녀가 그 얼음 실타래를 융합하게 도와주었다.
그녀는 점점 성장하면서 그것이 한 줄기 ‘정사(情絲)’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한때 죄책감을 느낀 적도 있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게다가 그 신비로운 골짜기를 다시 찾아가 돌려줄 방법도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이 남들보다 한 줄기 더 많은 정사를 가진 뒤로, 어떤 완고한 남자도 결국 그녀를 좋아하게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이 한 줄기 정사로 가능하다면,
두 줄기 정사를 가진 그녀는 사람들이 자신을 사랑하게 만들 수 있었다.
삶은 순탄했고, 그런 조건 아래에서라면 착한 사람이 되는 것도 꺼릴 일이 아니었다.
어린 시절의 일은 거의 잊고 살았다.
그러다 소소가 나타나고, 소늠의 태도가 점점 변하면서 모든 기억이 되살아났다.
자신이 그 골짜기의 절세미인에게서 훔쳐 온 정사와 호심린.
그 후로 그녀는 날마다 그 어린 시절에 본 자신의 결말을 떠올리며 불안에 떨었다.
아무리 계획하고 계산해도, 결국 자신의 모든 것을 잃어가고 있었다.
그녀는 지금껏 몰랐다. 왜 담태신이 더 이상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지.
그는 원래 소늠이나 방의지처럼, 마음속에 언제까지나 자신을 담아둘 사람 아니었나?
너무 괴로웠다.
칠흑 같은 어둠 속 지하 감옥, 더러운 죄수들이 뱉는 추잡한 말들, 매일같이 그녀의 살을 물어뜯는 뱀들.
그러나 그녀는 죽을 수 없었다.
담태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그녀가 목숨을 끊으려는 생각을 품기만 해도, 온몸에 힘이 빠져버렸다.
이런 고통 속에서, 그녀는 결국 모든 비밀을 털어놓게 되었다.
담태신은 궁전으로 돌아왔지만, 오랫동안 그 문을 열 용기가 나지 않았다.
침상에 누운 소녀의 몸은 편연의 그 만 년 된 강시(僵尸)가 아니었고, 이미 너무나도 망가져 있었다.
그는 궁전 바깥에 앉아, 쓸쓸하고 싸늘한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소소가 남긴 것은 그의 심장 속 여섯 개의 못과 눈물 흘리는 한쪽 눈뿐이었다.
그는 계단 위에 앉아 밤을 지새웠다.
하얀 눈송이가 그의 머리 위로 소리 없이 쌓였다.
멸혼정(滅魂钉)이 그의 살을 천천히 저미고 있었다.
처음에는 고통이 견딜 수 없을 만큼 컸지만, 점차 무뎌졌다.
차디찬 한기가 그의 몸을 파고들었다.
그는 스스로를 꼭 끌어안으며 입술을 깨물어 피를 흘렸다.
끝도 없이 밀려드는 외로움은 담태신의 마음속에 증오를 틔웠다.
그녀가 자신을 죽이려 했을 때조차도, 그는 이렇게까지 그녀를 미워한 적은 없었다.
첫 새벽빛이 비칠 무렵, 그는 마침내 문을 열었다.
그리고 차갑게 침상 위의 시신을 내려다보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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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 출처 : 구글, 티빙, YOUK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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