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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월신명] 长月烬明 원작소설 (黑月光拿稳 한국어)

[장월신명长月烬明]원작소설- 108장 오래도록 함께 <한국어 번역-黑月光拿稳BE剧本>

by 그림일기 그릿몬스터 2025. 5. 24.

⭐본 글은 드라마 장월신명 원작소설 흑월광나온(黑月光拿稳BE剧本)을 제가 번역한 것이라, 의역 있을수 있습니다⭐

장월신명-장월신명원작소설-장월신명원작소설번역-장월신명소설한국어-장월신명번역-흑월광나온-장월신명원작소설-108장 -담태신-라운희

장월신명 원작소설 흑월광나온 [黑月光拿稳BE剧本] 한국어 번역

108장. 오래도록 함께



창구민은 이번에야말로 끝까지 연기할 기세였다.

소소는 아직 그와 합수를 맺지 않았다. 
 
그러나 창구민은 무언가를 떠올리곤, 오히려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그녀 마음속에 꺼림칙한 감정이 있다는 건, 
결국 그녀 마음속에 월부애가 없다는 증거일까?

소소는 며칠을 지켜보다가, 그가 점점 더 완벽하게 연기하는 것을 보았다.  

이제 형양종의 제자들조차도 그를 존경받는 수석 제자로 여기게 되었음을 깨달았다.

온순한 양 떼 속에, 속내가 어두운 승냥이 한 마리가 섞여 있는데, 
제 본성을 억누르고 착하고 올곧은 척해야 하는 상황이라니.

소소는 장난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좋아, 그렇게 연기하고 싶다면, 끝까지 참고 견뎌야 할 거야.


 
그녀는 낮에 시녀들에게 향란초(香兰草) 화분을 들여놓게 했다.
밤이 되어 창구민이 돌아왔을 때, 방 안에 새로 놓인 두 개의 화분을 단숨에 알아챘다.

소소는 화분 곁에서 물을 주고 있었다.
오늘 그녀는 평소보다 안색이 좋았고, 정신도 한층 맑아 보였다.

창구민은 한참 그녀를 바라보다가, 눈빛이 부드러워지더니, 그녀의 허리를 뒤에서 감싸 안았다.
“오늘은 어쩐 일로 이런 걸 할 기운이 났어?”

두 사람이 도려로 맺어진 이후로, 이렇게 가까이 붙은 적은 거의 없었다.

창구민은 언제나 거리 조절을 신경 썼다.

월부애는 원래 과묵하고 내성적인 성격이라, 절대 먼저 적극적으로 나설 사람이 아니었으므로,
그도 그녀를 안을 때조차 너무 꽉 껴안지는 못했다.

소소는 속으로 웃었다. 
그가 체면과 예의를 유지하기 위해 얼마나 애쓰고 있는지 알기에, 장난기가 동했다.
“선전이 너무 밋밋해서, 제자들에게 화초 몇 개 들여놓으라고 했어.”

창구민의 입술이 그녀의 목덜미를 스치듯 지나가며, 그의 목소리는 낮고 거칠었다. 
"네가 선전이 지루하다고 느낀다면, 내일 우리 장택으로 돌아가자.”

“굳이 그럴 필요는 없어. 
장택은 너무 조용해서 싫어. 선전이 더 좋아.”

그는 그녀의 대답에 잠시 침묵하더니, 문득 물었다.
“이제 졸리지 않아?”

그의 시선이 그녀의 부드러운 목선을 따라 흘러내렸다.

 
평온한 목소리 속에 어딘가 미묘한 기색이 섞여 있었다.

마치 시험하듯 덧붙였다.
“우리가 혼인한 지 며칠이 지났는데, 네 명혼(命魂)은 아직도 회복되지 않았어.”

명혼을 온전히 복구하려면, 반드시 그녀가 깨어 있는 상태에서 합수를 맺어야 했다.

이건 누가 유리하고 불리한 문제가 아니었다.

현재 그녀의 상태로는, 창구민이 스스로의 수련을 희생해 그녀에게 수력을 전해주어야 했고,
그럴 경우 그의 수련은 오히려 뒤처질 뿐이었다.

소소는 그의 품에서 천천히 돌아섰다.

창구민은 순간적으로 감정을 조절하지 못해, 얼굴이 굳어졌다.

하지만 곧 그는 다시 월부애의 모습을 떠올리며, 맑고 깨끗한 눈빛을 만들어냈다.

순수하고 부끄러운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마치 아무런 사심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

소소는  속으로 생각했다.

‘네 진짜 속마음은 뭐야?
이걸 받아들이길 원하는 거야, 아니면 거절하길 바라는 거야?’

그녀는 웃음을 참으며, 머릿속으로 곧 펼쳐질 재미난 상황을 상상하며, 그에게 장단을 맞추기로 했다.

얼굴을 살짝 붉히며, 살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창구민의 얼굴에서 피가 싹 가셨고, 그의 손이 그녀의 허리를 강하게 움켜잡았다.

소소는 그의 표정을 보고,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단번에 알아챌 수 있었다.
그는 지금, 그녀가 ‘월부애와의 합수를 받아들이려 한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녀는 희미하게 깨달았다.
만약 그가 단순히 음탕한 육욕만을 품고 있는 사람이라면, 지금 분노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그는 이 상황을 오히려 반길 테니까.

그러나——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 
그는 화를 냈다.

그 짧은 순간,
그는 자신이 ‘월부애’라는 연기를 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잊을 뻔했다.

거의 본색을 드러낼 뻔했던 것이다.

그가 그녀의 허리를 움켜쥔 손이 너무 강해, 살짝 아플 정도였다.

그러나 소소는 모르는 척하며, 그를 향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부애?”

그는 깊은 분노를 억눌렀다.

그리고 간신히 입을 열어 말했다.
“…미안.”

소소는 맹세할 수 있었다.

그의 말투에서 이를 악무는 듯한 분노를 삼키는 기색이 역력했다.
분명히 분노가 이미 이성을 집어삼킬 정도였는데도, 그는 끝까지 침착하고 이성적인 척하려 애쓰고 있었다.

심지어 소소가 그를 올려다보는 순간, 그는 마지못해 웃음을 지어 보였지만,
그 새까만 눈동자 속엔 조금의 웃음기조차 없었다.

소소는 일부러 고개를 숙여 그의 허리띠를 풀기 시작했다.

그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지만, 온몸이 긴장한 채, 그녀의 머리 정수리를 날카롭게 노려보고 있었다.

“너는 월…… 내가 좋아?”
그의 손가락이 그녀의 턱을 움켜쥐었다.
“날 봐.”

소소는 순간 그에게 상기시켜 주고 싶었다.
‘너는 지금 월부애를 연기하고 있어. 
날 죽이고 싶은 원수가 아니라고.’

문득 그녀는 궁금해졌다.
이 사람, 도대체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그의 강요하는 듯한 시선을 마주한 채, 소소는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당연히 좋아하지.
부애, 너 왜 그래? 얼굴이 왜 이렇게 안 좋아?
난 너를 좋아하는데…… 너, 기쁘지 않아?”

그는 잠시 눈을 감았다가, 다시 눈을 떴을 때 억지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당연히 기쁘지.
어떻게…… 안 기쁠 수가 있겠어?”

그는 그녀를 세차게 끌어당겼다.

순식간에 아침에 자신이 정성껏 입혀준 소소의 겉옷은 그의 손아귀에서 산산조각이 났다.

소소는 속으로 웃음을 삼켰다.
그가 화가 났다는 걸 뻔히 알 수 있었다.

아마도 지금 당장이라도 그녀를 목 졸라 죽이고 싶은 심정이겠지.
그가 이렇게 분노하는 모습을 보니, 더 장난을 치고 싶어졌다.

그가 그녀를 침상 위로 밀쳐 눕히려는 순간, 소소는 이건 안 된다는 걸 직감했다.
정말 그가 덮쳐버리면, 지금 이 상황에서는 아마 그녀를 죽을 때까지 괴롭힐 수도 있었다.

그녀는 손가락을 살짝 움직였고, 곧바로 선전 밖에서 누군가 급하게 뛰어들어왔다.
“육령선자님! 육령선자님……!”

들어온 시비는 방 안의 상황을 보자마자 얼굴이 새빨개지며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창구민은 차갑게 말했다.
“나가.”

시비는 당황해하며 얼른 물러가려 했다.

소소가 물었다. 
“무슨 일이야?”

형양종에서 그녀의 지위는 월부애보다 더 높았기에, 시비는 급히 설명했다.

“낮에 제가 실수로 잘못 가져왔습니다.
원래는 벽사초를 가져와야 했는데, 실수로 향란초를 들였습니다.
그런데…… 선군께서 향란초를 접하면 두드러기가 일어나실텐데…….”

시비는 얼굴을 붉히며 급히 방 안에 있던 향란초 두 화분을 끌어안고는 재빨리 뛰쳐나갔다.

소소는 고개를 돌려 창구민을 바라보며 걱정스럽게 물었다. 

“아, 맞다! 내가 그걸 깜빡했네
넌 원래 향란초에 기운이 맞지 않아, 가까이만 가도 온몸에 붉은 반점이 올라오고, 열이 난다고 했지?
괜찮아? 어디 불편한 데 없어?”

그 순간, 몸 위에 있던 사람이 잠시 굳어졌다.

소소는 그의 이마에 손을 얹으며 의아해했다.
“왜?? 이상하네…….”

그녀가 말을 끝마치기도 전에,
그는 갑자기 그녀의 손을 움켜쥐고는, 어색하게 웃었다.
“조금 불편하긴 한데, 방금은 몰랐어.”

그러더니, 아무렇지 않은 듯 행동하며, 잠시 뒤 소소의 손을 다시 자신의 이마에 얹었다.

소소는 손끝으로 그의 체온을 느꼈다.

분명 방금 전까지만 해도 정상이던 이마가
지금은…… 펄펄 끓고 있었다.

그녀는 그의 소매를 걷어 올렸다.

그리고——

그의 탄탄한 팔뚝에, 붉은 반점이 듬성듬성 올라와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녀는 웃음을 터뜨릴 뻔했지만, 겉으로는 진심으로 걱정하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부애, 조금만 기다려. 내가 약을 가져올게.”

그녀는 그의 품에서 벗어나 화장대에서 작은 푸른색 병을 꺼냈다.
그리고 입가에 장난기 어린 미소를 띠며 돌아왔다.

“이거 먹으면 좀 나아질 거야.”

창구민은 그녀 손에 들린 병을 바라보며, 눈빛이 불안하게 흔들렸다.
그러다 천천히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그래.”

소소는 작은 알약 두 알을 손바닥에 올려놓았다.
그리고는 태연하게 헛소리를 지껄였다.

“이건 ‘소효단(笑效丹)’이라는 약이야.
효능이 특이해서, 복용하면 ‘웃음’으로 가려움이 해소되지.

그러니까, 먹고 나서 갑자기 웃음이 터져 나와도 괜찮아.
그냥 계속 웃으면, 어느새 가려움이 사라질 테니까.”

창구민의 얼굴이 미묘하게 굳었다.

소소는 그의 뺨을 손가락으로 살짝 꼬집었다.

‘이제 너는 월부애야.
그러니까, 감히 반항할 수 없겠지?’

그녀는 그의 입을 벌려, 직접 약을 밀어 넣었다.

잠시 후, 그녀는 눈앞의 창구민을 빤히 바라보았다.
“…왜 안 웃어?
이거 효과 좋은 약인데?”

그의 이마에서 핏줄이 튀어나왔다.
"참고 있는 중이다."

소소가 뭔가 더 말하려는 순간,
그는 더는 못 참겠다는 듯 그녀를 눕히고, 긴 다리로 그녀를 단단히 눌렀다.

"조용히 해, 장난 그만 치고."

소소는 그가 완전히 폭발하기 직전이라는 걸 느끼고, 순순히 가만히 누워 있었다.

오늘은 여기까지 놀리고, 내일 또 놀려야지.

'한 사람이 영원히 다른 사람이 될 수는 없어.'

누군가가 진짜 다른 사람이 되려면, 엄청난 인내와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

그렇게 생각하다가, 소소는 어느새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그녀는 천천히 의식을 되찾았다.
형양은 이미 깊은 밤이었고, 선전 안은 희미한 진주빛이 부드럽게 빛나고 있었다.

몸이 아주 편안했다. 
마치 따뜻한 물속에 몸을 푹 담긴 듯한 기분이었다.

눈을 떠보니, 창구민이 그녀에게 수련의 기운을 전해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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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월신명 13화-상주의 요기 정화시켜주는 명야


그의 창백한 손가락이 그녀의 미간에 닿아 있었고, 푸른빛이 두 사람 사이를 흐르고 있었다.

'매일 밤, 이렇게 편안하게 잘 수 있었던 이유가…… 이거였구나.'

소소는 오늘에서야 깨달았다.
비록 두 사람이 아직 합수를 하지 않았지만,
그녀가 명혼(命魂)이 부족한 고통을 느끼지 않았던 건——

매일 밤, 창구민이 자신의 수련의 기운을 그녀에게 나누어 주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명혼이 온전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이런 식으로 전해 받은 힘은 금방 흩어지고 말 텐데…….'

그가 그녀가 깨어난 걸 알고, 부드럽게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물었다.
"왜 그래? 어디 불편해?"

소소는 복잡한 감정에 휩싸여, 갑자기 조금 괴로워졌다.

맑고 고요하던 영혼의 세계가 무언가에 얽매인 듯, 
가슴이 묘하게 저릿했고, 머릿속이 묶인 듯한 기분이었다.

그리고——
시큼하고 뭉근한 감정이 가슴을 부풀게 하더니
콧등이 시큰해지고, 눈가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그녀는 갑자기 그의 목을 끌어안았다.

그가 내려다보았다.

그 눈빛은 원래 창구민 특유의 차갑고 냉담한 것이었는데,
그는 그것을 억지로 '월부애'의 순하고 온화한 시선으로 바꿔 담았다.

소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몸을 살짝 일으켜 그의 얼굴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창구민의 동공이 확장되었다.

믿기지 않는 듯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다가, 한참 만에 정신을 차리고는 그녀를 품속에 끌어안았다. 

장월신명 13화-합수해주다 상주의 입맞춤에 놀라서 눈 동그래진 명야


억지로 비꼬는 말투와 질투를 눌러 삼키며 말했다.
"잠이나 자, 려소소."

소소는 그의 옷자락을 살며시 쥐고는 입꼬리를 올렸다. 

 
이것이 그녀가 살아오면서 처음으로 느껴본, 
'그리움'이라는 감정이었다.

'월부애를 향한 것이 아니야.
이건 너야, 창구민.'




날마다 창구민이 월부애 행세를 하는 걸 보는게 너무 재미있었다.
그래서인지, 소소는 자칫하면 동익주 일도 잊을 뻔했다.

그동안 형양의 장로들과 주군은 회의를 거쳐,
형양과 동수의 관계를 완전히 단절하기로 결정했다.

형양은 앞으로 절대 동수에게
심법(心法), 검술, 선법(仙法)을 전수하지 않을 것이며,
백 년마다 열리는 대비 무경에도 더 이상 동수 제자들의 참여를 허락하지 않으며, 
만약 동수 제자가 형양 종문의 영역에 나타나면 그 자리에서 혼비백산해 소멸당할 운명이라는 것이었다.

수만 년 동안 선문 간에 이런 결렬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 파장은 말할 것도 없이 컸고, 적어도 형양과 가까운 관계였던 다른 선문들 역시 형양을 지지하며, 
더 이상 동수와 교류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백년 대비에서 퇴출,
형양의 비경(秘境) 진입 금지,
심법 전수 금지——

동수에게는 엄청난 타격이었다.

소소는 창구민이 이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했다.

하지만——
그는 시선을 낮춘 채, 그저 무덤덤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마치 동수에서 일어난 일들이 자신과는 아무 상관 없는 일이라는 듯이.

사실 소소도 동익주가 자신에게 고개 숙이며 사과하리라 기대한 것은 아니었다. 

수천 년을 살아온 그가 얼마나 오만한 존재인가?

애초에 그는 전쟁을 즐기는 성격이고, 자존심이 하늘을 찌르는 자였다.

그가 형양과 등을 지더라도,
한낱 어린 제자에게 고개를 숙이는 일 따위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건 또 뭐야?'

그녀가 명혼의 손상으로 인해 기절했는데,
눈을 뜬 순간, 그녀는 정자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정면에 앉아 있던 사람.
푸른 옷을 걸친, 백발의 중년 남성이 조용히 바둑을 두고 있었다.

소소는 깜짝 놀라 경계하며 바라보았다.
“동익주? 무슨 꿍꿍이지요?”

그녀는 이 자가 전에 자신을 죽이려 했다는 걸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동익주는 태연하게 말했다.
"겁낼 것 없다, 꼬마야. 
그냥 너와 이야기하고 싶을 뿐이다. 
자, 앉아라. 나와 한 판 두지 않겠느냐?"

소소는 그를 한 번 흘겨보았다.
자신의 수련이 그보다 한참 모자라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괜히 도망치거나 버틸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녀는 과감히 자리에 앉아, 대충 바둑돌을 내려놓기 시작했다.

잠시 후, 동익주의 얼굴이 점점 어두워졌다.
그는 바둑판을 내려다보더니, 짜증이 난 듯 소소를 바라보았다.

'바둑을 좋아하는 고수들은 자신이 지는 걸 용인할 수 있어도,
상대가 이런 형편없는 악수로 판을 망치는 건 도저히 참지 못하지.'

그는 결국 손을 휘저어 바둑판을 없애 버렸다.
그러고는 한숨을 쉬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러다 갑자기, 피식 웃었다.

“제법 재밌는 아가씨로군.” 

그의 눈빛 속에는
묘한 흥미와 깊은 통찰이 섞여 있었다.

마치, 그녀를 꿰뚫어 보는 듯한 시선이었다.

'거기에 총명하기까지 하니.
그러니 그 놈이 저렇게까지 빠져들었겠지.'

소소는 가볍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러니까, 대체 하고 싶은 말이 뭡니까?"

"버릇없이 말하는구나."

동익주는 등을 꼿꼿이 앉은 채, 한참 동안 말없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러다, 소매에서 조그마한 옥함을 꺼내 내밀었다.

"열어 보거라."

소소는 조심스레 뚜껑을 열었다.

그 안에는——
자줏빛으로 빛나는 '자정여의(紫晶如意)'가 놓여 있었다.

소소는 눈을 깜빡이며,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이건……?"

만약 그녀가 제대로 기억하고 있다면,
이것은 동술(東沭)의 역대 주인만이 가질 수 있는 신기(神器)였다.

천지의 영기를 흡수할 수 있으며, 전설에 따르면 심지어 아무런 자질도 없는 범인을
단 몇 년 만에 금단(金丹) 경지로 끌어올릴 수 있게 만든다는 말도 있었다.

그녀가 의아해하는 기색을 보이자, 동익주는 태연하게 말했다.

"사과의 뜻이다."

그리고는 그녀의 마음을 꿰뚫어 본 듯 덧붙였다.

"쓸데없는 기대는 하지 마라. 
전설은 어디까지나 전설일 뿐.
자정여의가 아무리 대단해도, 화신(化神)기에 이르러야 제대로 사용할 수 있는 물건이다."

소소는 더욱더 의아해졌다.

"왜 저한테 이런 걸 주시는 거죠?"

동익주는 도통 누구에게도 고개를 숙이지 않는 사람이다.
무엇보다, 이런 등급의 선기를 이렇게 쉽게 내놓을 리가 없었다.

그건 단순한 사과 이상의 의미였다.

그녀의 의문이 깊어질 무렵——

동익주는 아주 오랜 침묵 끝에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냥, 부탁하는 것이다.
그에게 조금 더 잘해 주거라."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어딘가 허망한 표정으로 말했다.

"넌 똑똑한 아이야.
 그는 너를 위해 모든 걸 내던졌지만, 너와 오래 함께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니…… 불쌍히 여겨다오.
 그애가 이 생에서 너무 힘들지는 않도록."

그는 그녀가 무슨 말을 할 새도 없이, 그렇게 등을 돌려 사라졌다.

동익주가 가고나서 소소는 정자를 한동안 떠나지 않고, 홀로 정자에 앉아 자정여의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이게 무슨 뜻이지?'

'동익주도 알고 있는 건가?
창구민이 월부애로 변장하고 있다는 걸?'

얼마 지나지 않아, 창구민이 급히 달려왔다.

그는 소소를 위아래로 살펴보며, 드물게 초조한 기색을 내비쳤다.

"괜찮아? 
그가 너한테 무슨 짓이라도 했어?"

소소는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그녀가 받은 것을 그에게 내보였다.

“그가 이걸 줬어.”

그녀의 손 위에서 반짝이는 자정여의를 본 순간——
창구민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는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겨우 입을 열었다.

"이걸 너한테 줬다고?"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러자, 소소가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러게. 우리 둘이 오래오래 함께하라고 주셨나 봐.
장수하고, 머리가 하얗게 될 때까지, 행복하게 살라는 축복 같은 거겠지?

이렇게 좋은 보물을 마다할 이유가 없잖아?"

그녀는 태연하게 미소 지으며, 그의 손을 가만히 잡았다.

그러자, 창구민은 얼굴에 잔잔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부드럽게 말했다.

"그래."

그는 그녀의 이마에 살며시 입을 맞췄다.

하지만——
나의 이 세상에 무슨  ‘장생상반(長生相伴), 직지백수(直至白首)’ 같은 게 있겠는가.

'오래도록 함께한다는 꿈 같은 말 따위,
나 같은 자가 가질 수 있는 게 아니지.'

그는 속으로 조소하며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살아 있는 한——

너는 절대로 나에게서 벗어날 수 없어.

비록 내가 썩어 문드러지고, 완전히 망가진다 해도——

너를 절대 놓아주지 않을 거야.

려소소, 넌 정말…… 불쌍하구나.
 
 
<계속>
 
*추가설명 : 장생상반(長生相伴), 직지백수(直至白首)"은 혼례 맹세 입니다.(우리나라 검은머리 파뿌리-와 비슷한 의미)

  • 장생상반(長生相伴) : 평생토록 서로의 곁을 지키며 오래 살자
  • 직지백수(直至白首) : 머리가 하얗게 셀 때까지 함께하자

* 이번장의 소제목은 원제가 '장수(长岁)'인데, 창구민이 읇조리는 '장생산반, 직지백수'의 의미를 함축한 것으로, 단순히 오래 산다는 의미가 아니여서 '오래도록 함께'로 의역하였습니다.
 
⭐ 해당 글은 제가 열심히 작성하였으니, 무단으로 복제 하지 말아주세요 ⭐
* 이미지 출처 : 구글, 티빙, YOUK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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